“처음 뛴 트랙서 동메달, 좋은 출발입니다”… ‘스켈레톤 영웅’ 윤성빈의 2019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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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순간은 짧고 다시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은 길다. 평창 겨울올림픽 깜짝 금메달로 스타 탄생을 알렸던 윤성빈은 다시 고된 훈련과 출전을 반복하고 있다. “누구의 인생이든 굴곡은 있지만 그 굴곡을 줄이고 늘 성장하고 싶다”는 마음가짐으로 새해를 맞이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영광의 순간은 짧고 다시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은 길다. 평창 겨울올림픽 깜짝 금메달로 스타 탄생을 알렸던 윤성빈은 다시 고된 훈련과 출전을 반복하고 있다. “누구의 인생이든 굴곡은 있지만 그 굴곡을 줄이고 늘 성장하고 싶다”는 마음가짐으로 새해를 맞이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2019년에는 황금 돼지가 될 건가요?”

지난해 초 그는 ‘황금 개’가 되겠다는 약속을 내걸었다. 개띠인 자신이 금메달을 따서 황금 개가 되겠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 약속은 현실이 됐다. 그렇다면 돼지해인 올해는?

윤성빈(25·한국체대)은 지난해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불모지였던 한국 썰매에 금메달을 안기며 한국 겨울스포츠의 상징적 인물로 거듭났다. 최근 소속사인 서울 강남구 올댓스포츠 사무실에서 만나 2018년의 의미와 2019년 새해의 각오를 물었다. 평소 재치 있는 입담을 보여줬던 신예 스타는 진지하게 답했다.

“누구의 인생이든 굴곡은 있습니다. 저는 그 굴곡을 줄이고 늘 성장하는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1등 몇 번 하고 바로 추락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정상을 오가는 그런 선수 말이죠.”

그는 지난해 설날 아침에 금메달을 따며 국민을 향해 넙죽 큰절했던 그 순간을 돌이켰다.

“끝났구나.”

그가 꼽은 영광의 순간은 시상대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던 때가 아니다. 그는 지난해 평창 겨울올림픽 당시 4차 레이스(마지막)에서 결승선을 통과해 썰매가 멈추기 직전의 1초가 안 되는 짧은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트랙 안에서 고개를 들어 전광판에 찍힌 ‘1위’라는 기록을 봤을 때다. 그동안 쏟아부었던 피와 땀의 결실을 오롯이 혼자서, 또한 가장 먼저 만끽한 순간이다.

“올림픽 이후 3주 정도 쉬고 일상으로 돌아갔어요. 다시 몸을 만들고 체력을 기르며 다음 IBSF 월드컵 시즌에 대비했죠. (휴식이 너무 짧은 것은 아닌가?) 운동을 시작하고 그때가 가장 길게 쉰 것이에요. 우리 (썰매) 선수들은 그게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어요. 오히려 쉬면 이상할 정도예요. 앞으로 제 선수 인생에서 그렇게 길게 쉴 수 있는 시간은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요. 슬픈 예감이네요(웃음).”

65cm에 달하는 윤성빈의 허벅지 둘레는 지난해 여러 화젯거리 중 하나로 꼽혔다. 웬만한 여성 허리만 한 크기의 허벅지는 그가 폭발적인 스타트를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했다. 그는 “올림픽 이후 한 번도 재보지 않았다”면서도 “살이 빠져 아마 조금 줄지 않았을까 한다”며 웃었다. 짧은 휴식 끝에 다시 몸 단련에 힘쓴 만큼 “파괴력은 여전할 것”이라는 자신감도 내비쳤다.

윤성빈은 “금메달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뜻밖의 소식도 전했다. 그는 지난해 9월 올림픽 관련 전시(서울 송파구 소마미술관)에 금메달을 빌려줬다. 그는 “2월쯤 다시 돌려받기로 했다. 눈에 (금메달이) 선하다”며 익살스러운 ‘사금곡(?)’을 전했다. 그러면서도 과거의 영광인 금메달과 멀어지니 “더 발전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는 말을 전했다.

이제 조금은 여유를 부려도 될 것 같지만 윤성빈은 여전히 자신을 엄하게 관리하며 채찍질하고 있다. 2012년 썰매계에 처음 입성했을 때 제대로 된 장비와 훈련장이 하나도 없어 선배에게서 물려받은 헬멧과 유니폼으로 해외 경기장을 전전했던 성장통의 시간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어서다. “경기장이 없을 때야 그러려니 했지만 멀쩡히 있는데도 훈련을 못 하니 그게 더 속이 쓰리더라고요. 어쨌든 저는 제가 가야 할 길을 걸어갈 각오입니다. 누군가가 ‘이렇게 고생하고 있구나’라고 알아봐 줬으면 하는 마음은 없습니다. 그저 열심히 할 뿐이에요.”

윤성빈이 금빛 질주를 했던 평창 슬라이딩센터는 그간 운영 주체가 정해지지 않아 올림픽 이후 운영되질 못했다. 실전 감각을 끌어올리지 못한 채 새 시즌을 맞이하는 게 아쉽긴 하지만 늘 그렇듯 윤성빈에게 역경은 그저 헤쳐 나가야 할 과제일 뿐이다. 윤성빈은 앞서 라트비아 시굴다에서 열린 남자 스켈레톤 1차 월드컵 대회(지난해 12월 8일)와 독일 빈터베르크에서 열린 2차 대회(지난해 12월 14일)에서 각각 3위로 시즌을 시작했다. 4일부터는 독일 알텐베르크에서 3차 대회가 열린다.

“(라트비아) 시굴다 트랙은 제가 처음 가본 데예요. 입상할 것이란 기대조차 하지 않았죠. 올림픽 금메달을 땄기에 기대감이 커진 것도 압니다. 하지만 이 트랙에 관해 정보도, 경험도 없었던 저로서는 3위를 했다는 게 오히려 놀라운 일입니다. 2차 대회에서도 동메달을 따서 경기 감각을 올리고 있어요. 나쁘지 않은 시작입니다.”

윤성빈은 멀게는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을 바라본다.

“경기는 모르는 겁니다. 저는 해왔던 대로 열심히 2019년을 보낼 거예요. 섣부르게 판단하지 않고 평가하지 않겠습니다. 함부로 ‘금메달’을 장담하거나 자만해서 탈선하지 않을 거예요. 저를 응원해주신 국민들도 새해에 저를 보고 힘을 냈으면 좋겠습니다.”
 
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평창 동계올림픽#윤성빈#스켈레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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