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기겁하겠지만, 나는 ‘마이너 고생’ 그리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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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 추신수-하원미 부부 인터뷰

“때로는 친구 같고, 어떨 땐 여자친구 같다. 가끔씩은 엄마 같기도 하다.” 한국인 메이저리거 추신수가 말하는 아내 하원미 씨의 모습이다.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 만난 두 사람이 한 팔씩을 들어올려 하트 모양을 만들어 보이고 있다. 부산=이헌재 기자 uni@donga.com
“때로는 친구 같고, 어떨 땐 여자친구 같다. 가끔씩은 엄마 같기도 하다.” 한국인 메이저리거 추신수가 말하는 아내 하원미 씨의 모습이다.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 만난 두 사람이 한 팔씩을 들어올려 하트 모양을 만들어 보이고 있다. 부산=이헌재 기자 uni@donga.com
메이저리거 추신수(36·텍사스)의 귀국 현장에 언론사 카메라가 등장한 것은 10년 전인 2008년경부터다. 마이너리그의 ‘눈물 젖은 빵’을 먹다 빅리거로 발돋움한 뒤의 일이다. 당시 그와 아내 하원미 씨(35) 사이에는 세 살이던 장남 무빈 군이 있었다. 해가 갈수록 귀국하는 추신수 가족의 수가 늘었다. 2009년 둘째 아들 건우 군이, 2011년 막내 소희 양이 태어나면서 5명이 됐다.

23일 귀국한 ‘추(Choo) 패밀리’의 올해 귀국 현장에는 어느덧 13세가 된 무빈 군의 키가 아빠와 얼추 비슷해져 취재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덩치로 보면 형제라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 부산 롯데호텔에서 만난 추신수 하원미 씨 부부는 “그동안 우리 가족의 귀국 사진만 모아도 의미 있는 추억이 될 것 같다”며 웃었다.

때론 친구처럼, 때로는 애인처럼 서로를 살뜰히 챙기는 두 사람으로부터 롤러코스터와 같았던 올 시즌과 미국 생활에 대해 들어봤다. ‘내조의 여왕’으로 불리는 하 씨가 한국 신문과의 인터뷰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베트남 쌀국수와 올스타전

올해 추신수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52경기 연속 출루 기록과 생애 첫 올스타전 출전이다. 추신수는 올 시즌 역대 팀 최다 연속 경기 출루 기록(46경기)과 스즈키 이치로(일본)가 갖고 있던 아시아 선수 출루 기록(43경기)을 모두 경신했다. 덕분에 꿈에 그리던 올스타전까지 나갈 수 있었다.

이 기록 뒤에는 ‘베트남 쌀국수’가 조연으로 등장했다. 추신수는 “나도, 동료 선수들도 쌀국수를 좋아해서 원래 선수단 식사에 베트남 쌀국수가 자주 나왔다. 그런데 기록이 이어지면서 어느 순간부터 쌀국수가 빠지지 않더라”며 “연속 경기 출루가 53경기째에서 끝난 뒤 몇몇 선수들이 ‘네 기록이 깨진 건 아쉽지만 더 이상 쌀국수를 안 먹어도 돼 기쁘기도 하다’고 말하더라”며 웃었다.

추신수는 올스타전까지는 기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아내 하 씨에게 “올스타 휴식기에 푹 쉬고 여행이나 가자”고 말했다. 이에 대한 하 씨의 대답은 이랬다. “지난 10년 동안 올스타 기간 중 많이 쉬었고 여행도 많이 갔잖아. 올해는 시즌 끝나고 쉬어”였단다.

하 씨는 “매년 시즌이 시작될 때마다 올스타전을 꿈꿨다. 그런데 올해는 남편이 연속 경기 출루를 이어가면서 너무 잘하더라. 그래서 나도 모르게 더 욕심을 낸 것 같다. 한 달 전부터 (올스타전에 나가면 입을) 내 드레스와 아이들의 옷을 샀다. 혹시 탈락할 것에 대비해 가격표를 떼진 않았다. 반품을 해야 할 수도 있으니까”라고 했다.

야구를 하는 큰아들 무빈 군의 리틀야구 경기 후 찍은 기념사진이다. 하원미 씨 인스타그램
야구를 하는 큰아들 무빈 군의 리틀야구 경기 후 찍은 기념사진이다. 하원미 씨 인스타그램
○ 야구 선수 아들 3명 키우기

야구 선수 아빠처럼 두 아들 무빈 군과 건우 군도 리틀리그에서 야구를 한다. 뒷바라지는 고스란히 하 씨의 몫이다.

하 씨는 “미국의 리틀야구 토너먼트는 주말 오전 6시에 시작한다. 이기면 하루에 4, 5경기를 한다. 어떤 날은 무빈이와 건우 경기를 번갈아 봤는데 하루에 8경기까지 봤다”고 말했다. 그는 “나도 그렇지만 소희가 더 고생했다. 두 아들의 경기가 다른 운동장에서 열리는 바람에 차로 왔다 갔다 해야 했다”고 말했다. 파김치가 되어 집으론 돌아온 그날 저녁에는 텍사스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남편의 경기를 보러 가야 했다고 한다. 하 씨는 “그런 날은 한동안은 야구공의 빨간색 실밥도 보고 싶지 않다”며 웃었다.

두 아들도 그렇지만 추신수도 손이 많이 간다. 예를 들어 외출할 때 “오늘 면바지 입을까 아니면 청바지 입을까” 하는 식이다. 하 씨는 “나도 남편에게 많은 걸 의지하지만 남편도 마찬가지다. 어떨 땐 야구 선수 아들 3명을 키우는 것 같다”고 했다.

추신수는 두 아들이 야구를 하는 것을 뿌듯하게 바라보면서도 칭찬은 잘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미국에는 뛰어난 몸과 재능을 타고난 선수가 정말 많다. 하지만 대다수가 메이저리거가 되지 못한 채 야구 인생을 접는다. 노력과 절실함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도 이 길이 얼마나 힘든 길인지를 스스로 깨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부부는 동아일보 독자들에게 미리 새해 인사도 전했다. 추신수 가족은 내년 1월 5일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부산=이헌재 기자 uni@donga.com
부부는 동아일보 독자들에게 미리 새해 인사도 전했다. 추신수 가족은 내년 1월 5일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부산=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꿈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야구로 큰 성공을 거둔 추신수는 부와 명예를 동시에 얻었다. 2013시즌 뒤 자유계약선수(FA) 자격으로 7년간 1억3000만 달러(약 1457억 원)짜리 대형 계약을 했다. 하지만 이 부부는 돈과 행복은 별개라고 입을 모았다.

추신수는 “돈을 벌기 위해 야구를 한 게 아니다. 야구를 시작했을 때 단 한 타석이라도 메이저리그에 서는 게 꿈이었다. 메이저리거가 된 후엔 이 자리를 지키고 싶었다. 지금도 야구만 생각하면 가슴이 뛰고 행복하다. 언제든 야구장 가는 길이 즐겁지 않으면 미련 없이 그만둘 것”이라고 했다. 베테랑임에도 그는 지금도 가장 먼저 야구장에 출근해 가장 늦게 퇴근한다. 저녁 경기라도 오전 11시면 야구장에 가는 게 습관이 되어 있다.

하 씨 역시 “통장에 얼마가 있건 나는 그냥 애 키우는 사람이다. 매일 애들 학교, 학원, 운동장 태워 보내고 밥해 주고 나면 하루가 바쁘게 간다. 도움 주는 사람을 고용할 수 있지만 그러지 않는다. 내 아이들에게 내가 맛있는 밥 해 먹이는 게 내겐 가장 큰 행복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요즘도 두 사람은 힘들었던 마이너리그 시절을 떠올리곤 한다. 추신수는 “살아가면서 힘들 때가 있다. 그러면 마이너리그 때 고생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견뎌낸다”고 했다.

그런데 하 씨의 반응은 달랐다. “21세 때 남편만 믿고 미국에 왔다. 마이너리그 시절 다른 마이너리거 가족들과 같은 아파트에 살았다. 남편들이 원정을 떠나면 우리끼리 모여 야구도 보고, 영화도 봤다. 서로 옷을 바꿔 입기도 했다. 가난했지만 꿈이 있었다. 무빈이 아빠는 그때가 정말 힘들었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너무 재미있는 시절이었다. 가끔씩은 다시 한번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부산=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추신수#추패밀리#메이저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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