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회 톡톡]부장님, ‘술 푸면 슬퍼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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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 올 연말에도 ‘술생술사(술에 살고 술에 죽는다)’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습니다. 다만 예전처럼 술이 송년회의 모든 것은 아닙니다. 연말 보내기의 반란, 묵은 한 해를 보내는 현명한 방법, 다양한 사람들의 ‘송년회’를 들어봤습니다. 》
 
‘쫀드기’ 걸고 갤러그 대결

“저희 회사는 송년회를 테마 파티 형식으로 진행합니다. 올해는 ‘추억의 오락실’이라는 콘셉트로 갤러그 등 추억의 게임기를 여러 대 빌렸어요. 부서 간 게임 대결을 했는데, 경품은 학교 앞에서 팔던 쫀드기 같은 추억의 식품이었죠. 다양한 연령대가 함께 부대낄 수 있는 콘셉트로 매년 다른 송년회를 열고 있어요. 송년회 뒤 업무 분위기는 당연히 부드러워집니다.” ―김민경 씨(인실리코 전략기획팀장)

“부서 사람들과 ‘마니또’를 했어요. 회사에서 마니또를 한다는 게 신기했죠. 제비뽑기로 대상을 골랐고 칭찬을 퍼뜨리거나 선물도 마련했습니다. 한 남성 직원은 연애편지같이 길고 정성스러운 편지를 써서 동성 직원에게 줬어요. 중간중간에 하트도 그렸죠. 받는 분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건전한 소통 문화가 될 것 같기도 해요. 저는 저희 부서 부장님을 뽑았어요. 결과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원모 씨(30대·여행사 직원)

“상무님 자택에서 송년회를 열었어요. 이런 회식은 처음이라 고민되고 어색했어요. 막상 갔더니 집을 카페처럼 꾸며 놓고 파스타, 샐러드 등 다양한 음식을 준비했더라고요. 조용하고 편했어요. 대화 주제도 ‘공장(업무 관련) 이야기’보다 집 인테리어, 여행, 만화책 등 소소한 주제가 대부분이었죠. 어렵게 느껴졌던 상무님이 어느덧 동네 아저씨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김정은 씨(보험회사 직원)

“저희 회사는 12월 20일쯤에 점심식사 송년회를 하고 연초까지 쉽니다. 일종의 직장인 방학이죠. 연차를 붙여서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긴 휴가로 새해를 견딜 만한 충전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밀린 일을 집에서 처리하는 사람도 있어요. ‘직딩’의 숙명이랄까요.” ―심혜윤 씨(24·회사원)

“책방에 송년회 공간을 따로 마련했습니다. 모인 사람들은 정치, 경제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거나 아예 독서 토론회를 열어요. 18세기 프랑스의 ‘살롱’ 같은 분위기랄까요. 여기서 음식도 해먹으면서 편한 시간 보냅니다. ‘힘들었던 한 해를 잊자’라는 의미보다는 새해 출발을 준비하는 시간이었으면 합니다.” ―김이듬 씨(40대·책방 주인)

이불 밖은 위험해

“지난해 성탄절 전날 친구들끼리 홈파티를 했어요. 연말은 식당 예약도 쉽지 않고 어디를 가도 복잡해요. 호텔이나 레지던스 파티룸을 빌리자니 너무 비싸죠. 감바스를 만들고 친구들이 가져온 음식과 과일, 케이크를 상에 올리니 풍성했어요. 드레스코드 맞춰 입고 사진을 찍고 서로 준비한 선물이나 편지를 교환하면서 따뜻한 연말을 보냈습니다. 올해도 친구 집에 모일 예정입니다. 집에서 파스타와 스테이크를 만들고 보드게임을 하려고요.” ―김하은 씨(20대·대학생)

“홈파티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관련 용품 ‘연말 기획전’을 열었습니다. 모든 음식을 직접 준비할 시간이 없을 때 간단하고 풍성한 메뉴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로스트치킨과 티본스테이크, 연어스테이크, 바닷가재 등 파티에 어울리는 식품 판매량이 늘고 있어요.” ―전혜수 씨(30·마켓컬리 브랜드마케팅팀 사원)

“지난해 캐나다에서 어학연수를 했는데, 연말이면 현지 상점들은 문을 닫고 보통 가족끼리 크리스마스를 보냅니다. 유학생이라 마땅히 갈 곳도 없어서 굉장히 외로웠습니다. 다행히도 현지 가정에서 홈스테이를 했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칠면조 요리를 해줬습니다. 세상에서 그렇게 큰 칠면조는 처음 봤어요. 싸이의 강남스타일 음악에 맞춰 함께 같이 말춤도 췄습니다.” ―이연정 씨(20대·명지대 학생)

아직도 부어라 마셔라?

“주 52시간 근무제는 ‘저녁이 있는 삶’을 지향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집에 일찍 가는 것’으로 의미가 변질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직장 동료들과 어울리는 것 자체가 ‘근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자연히 송년모임이 위축됩니다. 긍정과 부정을 딱 부러지게 평가하기 어렵지만 확실한 것은 기존 송년회 문화가 바뀌고 있다는 것이죠.”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

“올해 송년회는 딱 두 번밖에 없습니다. 제 또래분들이 많이 실직했어요. 경기가 좋지 않고 사회 분위기가 가라앉아 행사 자체를 여는 게 쉽지 않아요. 이번 연말은 지인들을 챙기기보다는 가족과 함께 보내는 방향으로 바꿨어요. 아이들과 함께 가까운 일본으로 여행을 떠날 생각입니다.” ―김모 씨(40대·자영업)

“성별, 연령에 따라 송년회 방식이 크게 달라요. 남자 교수가 많은 모임은 행사가 적어도 2차까지 이어지며 술을 많이 마십니다. 여자 교수끼리 모이면 행사가 오후 6시에 시작해서 3시간 만에 끝나죠. 점심으로 대체하거나 와인 한 잔으로 모임을 마칠 때가 많아요. 올해 ‘미투 운동’이 일어나면서 술을 권하는 일이 더 없어졌어요.” ―홍주현 씨(40대·대학교수)

“연말이면 족구회, 조기축구회, 계모임 등 소소한 모임에서 예약을 많이 잡았어요. 이런 분들을 잘 챙겨드리면 단골을 만들 수 있죠. 가게 주인에게는 기회입니다. 하지만 단체 예약이 많이 줄었어요. 적당히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갑니다. 과거에는 연말 식당에서 송년회를 하면 취해서 뻗어 있는 사람들이 매일같이 보였어요. 요즘은 그런 모습을 보기 힘듭니다.” ―배희순 씨(50대·식당 운영)

“금융권에는 여전히 ‘군대식 문화’가 존재합니다. 술을 마시라면 마실 수밖에 없는 분위기죠. 많은 새내기 직장인들은 송년회를 두려워합니다. 목으로 넘어가는 술의 양이 패기로 이어지지 않아요. 술이 업무 성과를 내는 것도 아니니까요. ‘우리가 남이가’식의 관계 설정은 더더욱 아니죠.” ―유모 씨 (20대 후반·금융회사 직원)

▼ 연말이 없는 사람들

“대학병원 중환자실 간호사입니다. 3교대 근무를 하는데 올해는 성탄절, 31일 모두 밤샘 근무에 걸렸어요. 중환자실에서는 한 시간마다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내년이 되는 순간에도 일하고 있을 제 모습이 그려집니다. 다만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있어서 작은 위로가 됩니다.” ―이모 씨(20대·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 간호사)

“연말이면 취해서 버스에 타는 승객이 굉장히 많아요. 이런 손님들은 다짜고짜 욕부터 합니다. 저희는 한마디도 대꾸를 못해요. 토사물을 뱉는 분도 있는데, 저희가 다 직접 치웁니다. 주무시는 분도 많은데,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연말이 달갑지 않아요.” ―최육 씨(60대·심야버스 기사)

“지난해부터 딸과 작은 커피숍을 운영하고 있어요. 연말엔 눈코 뜰 새 없을 정도로 바빠요. 주문이 폭주하고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진행하는 이벤트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하루를 마감하면 가족끼리 맥주 한 캔으로 기분 정도는 내려고요.” ―김미순 씨(50대·커피숍 운영)

“교사 임용시험을 준비하고 있어서 연말 모임을 아예 거절합니다. 최근 한 친구가 하소연을 하더라고요. 이미 취업한 친구가 너무 부럽다고. ‘얘 취했구나’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저도 공감했습니다. 상대적인 박탈감도 느끼고 씁쓸한 생각도 들죠. 예민한 성격이 아닌데 좀 예민하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홍모 씨(20대·취업준비생)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정혜리 인턴기자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4학년
#송년회#연말#저녁이 있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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