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서 만난 예멘 난민들 “집세보다 적은 막내딸 월급으로 빚지며 버텨”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19일 16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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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에 사는 예멘인 하마드 씨(60)가 태어난 곳은 예멘이 아니었다. 그는 아프리카의 소말리아에서 태어났다. 하마드 씨의 할아버지가 고향인 예멘을 떠나 소말리아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전으로 하마드 씨는 할아버지의 고향인 예멘으로 다시 돌아갔다. 하마드 씨 가족이 겪은 내전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는 올해 1월부터 가족과 함께 요르단에 살고 있다. 예멘에서 2015년 벌어진 내전을 피해서 온 것이다.

지난달 15일(현지 시간) 방문한 요르단 수단 암만에 있는 하마드 씨의 집은 66m²(옛 20평) 남짓한 규모였다. 하마드 씨 가족은 그의 아내와 아들 3명, 딸 2명 등 총 7명이었다. 그는 정신질환이 있어 초등학생 정도의 지능이라는 막내아들(29)과 함께 기자를 맞았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요르단에 있는 예멘 난민의 수는 올해 8월 기준 1만2194명에 달한다. 예멘 내전으로 발생한 난민 30만 명 가운데 상당수가 요르단으로 흘러든 것이다. 요르단이 같은 이슬람 문화권이고, 비교적 정부의 시스템이 안정돼 있어 이곳을 택한 난민들이 많다는 분석이다.

요르단에 온 상당수의 예멘 난민들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올해 8월 중동 지역 시민단체인 ‘민주주의와 발전을 위한 아랍르네상스(ARDD)’는 보고서를 통해 “요르단에 있는 예멘 난민들이 빈곤으로 인해 주택 퇴거 문제까지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마드 씨 가족의 경우 고정적인 수입은 막내딸의 월급 140디나르(약 22만 원)가 전부다. 매달 내는 집세 160디나르(약 25만 원)보다 적은 돈이다. 다른 아들과 딸들은 일자리를 찾고 있는 중이다. 하마드 씨와 아내는 몸이 불편해 일을 하지 못 한다. 하마드 씨는 “빚을 내서 생활하고 있다”며 “요르단 사람인 집주인이 사정을 봐줘서 그나마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예멘 탈출 직전 반군에 징집된 막내 아들을 군에서 빼내기 위해 재산 대부분을 썼다.

이들 가족이 살고 있는 지역이 암만에서 집세가 비싼 곳도 아니다. 이른바 ‘헤일 마자르(이집트의 이웃동네)’라고 불리는 이곳은 언덕에 있어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다. 메살 엘 파예즈 UNHCR 난민협력담당자는 “지금은 이집트 사람은 물론 예멘, 수단 등에서 온 사람들도 많이 산다”고 설명했다.

요르단 정부와 UNHCR에서도 재정지원을 하고 있지만 부족한 실정이다. 요르단은 예멘 난민 외에 시리아와 이라크 등에서 온 난민도 받아들이고 있다. 요르단 정부가 운영하는 아즈락 캠프에서 사는 시리아 난민만 약 4만 명이다. ARDD 측은 “구호단체들의 지원이 시리아 난민들에 집중되면서 예멘 난민들은 소외받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예멘 난민들 가운데 젊고, 정보 습득이 빠른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중동 지역이 아닌 곳까지 가기도 한다. 내전이 장기화되다 보니 예멘을 탈출하면서 가지고 나온 돈으로는 버틸 수 없어서다. 한국이 대표적인 사례다. 제주에서 난민 신청을 한 예멘인 549명 가운데 남성이 504명(91.8%)이었다. 난민신청자 중 20~30대가 449명(81.8%)에 달한다. 올해 6월 제주에서 만난 예멘인 난민 A 씨(30)는 “말레이시아에선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어 한국까지 왔다”면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내전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고 말했다.

예멘은 유엔의 중재로 정부와 후티 반군 사이에 13일 평화협정이 맺어졌다. 내전 발생 후 처음 맺어진 협정이었다. 하지만 이튿날 최대 격전지인 호데이다 지역에서 또 다시 교전이 벌어지는 등 불안감은 여전하다.

암만=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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