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정부는 실험실… 노동 개선 다양한 정책 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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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정부 노동정책 설계자’ 와일 교수, 박원순 시장에 조언

박원순 서울시장(오른쪽)과 데이비드 와일 미국 브랜다이스대 교수가 11일 오후 서울시청 시장 집무실에서 대담을 나누고 있다. 두 
사람은 경영 효율을 위해 비핵심 분야를 외주화하는 것이 근로자의 노동 환경을 악화한다는 데 공감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박원순 서울시장(오른쪽)과 데이비드 와일 미국 브랜다이스대 교수가 11일 오후 서울시청 시장 집무실에서 대담을 나누고 있다. 두 사람은 경영 효율을 위해 비핵심 분야를 외주화하는 것이 근로자의 노동 환경을 악화한다는 데 공감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지방정부는 ‘민주주의의 실험실’과 같습니다. 중앙정부가 하기에 부담스러운 공공 정책을 시도해 노동 환경을 개선하는 시도를 얼마든지 해볼 수 있습니다.”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노동정책 설계자로 불리는 경제학자 데이비드 와일 미국 브랜다이스대 교수는 11일 서울시청에서 박원순 서울시장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이날 서울시가 주최한 ‘2018 좋은 일자리 도시 국제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하기 위해 방한한 와일 교수는 오후에 박 시장과 시장집무실에서 따로 만나 ‘우리 사회 균열일터 해결을 위한 공공의 역할과 대안’을 주제로 30분간 대담을 가졌다. 와일 교수는 중앙정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권한이 적은 지방자치단체라 하더라도 노동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시도해보라고 조언했다.

‘균열일터’라는 개념으로 잘 알려진 와일 교수는 2014년부터 지난해 1월까지 미 노동부 산하 임금 및 근로기준분과에서 행정관으로 일했다. ‘균열일터’란 혁신과 이익 극대화를 앞세운 기업들이 하청이나 특수고용을 통해 비핵심 부문을 외부로 이전하면서 근로자들의 노동 환경이 악화되는 ‘균열 현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본 것이다. 같은 제목의 책이 2015년 국내에도 출판됐다.

박 시장은 대담에서 와일 교수의 ‘균열일터’가 한국 사회에도 적용된다며 이를 서울시가 선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물었다. 와일 교수는 2015년 당시 오바마 대통령의 요청으로 시작된 프로젝트를 꺼내 들었다. 연방 도급업자들이 노동법을 위반한 경력이 있을 경우 규정을 준수할 때까지 다른 계약을 맺기 어렵게 압박하는 정책을 도입했더니 기업들의 시정 속도가 빨라졌다는 것이다. 박 시장은 “근로감독 권한 등이 없는 서울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도 충분히 배우고 검토해볼 수 있는 정책”이라고 답했다.

두 사람은 11일 오전 오영식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사장이 고속철도(KTX) 탈선 사고로 사임 의사를 밝히면서 “과도한 경영 합리화가 사고의 근본적 원인”이라고 말한 것을 두고 대화를 이어갔다. 와일 교수는 ‘위험의 외주화’가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운영비용을 늘리고 효율성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데 전폭적인 동의를 표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와일 교수는 “우리도 하청 계약이 일터를 위험하게 만드는 많은 사례를 접했다. 균열된 일터가 지속 가능한 성장을 막는다는 데 동의한다”고 말했다.

와일 교수는 박 시장이 내놓은 ‘유니언 시티(Union City)’ 구상도 높게 평가했다. ‘유니언 시티’는 노동행정을 분권화해 서울시를 친(親)노동 도시로 만들겠다는 박 시장의 구상이다. 와일 교수는 “‘유니언 시티’라는 아이디어가 굉장히 인상적이다. 노동 환경을 개선하겠다는 서울시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다른 도시들도 도입하고 싶어 할 것”이라고 말했다.

와일 교수가 기조 연설자로 참석한 ‘2018 좋은 일자리 도시 국제포럼’에서는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지방정부의 역할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이어졌다. 미국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오스트리아 빈과 이탈리아 밀라노 등 16개 도시, 국제노동기구(ILO) 등 17개 기관의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12일까지 열린다. 12일 오후에는 이상헌 ILO 고용정책국장이 참여하는 ‘급변하는 노동시장에서 기회 찾기’ 세션이 마련된다. 올해로 2회째를 맞은 포럼에서는 서울시 등을 중심으로 한 ‘좋은 일자리 도시협의체(DWCN)’ 창립이 추진된다.

11일 오전 개막식에서는 노동 환경을 개선하고 좋은 일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앞으로 지방정부의 노력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은 축사를 통해 “중앙정부의 계획된 시스템 아래서 움직였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지역별 특화산업이 자리 잡고 있다”며 “그와 연계된 일자리 정책의 중요한 역할을 지방정부가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오바마 정부 노동정책 설계자’#와일 교수#박원순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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