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속하면 도로 내려앉아 ‘덜컹’… 속도위반 80→30%로 뚝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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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운전 차보다 사람이 먼저다]<22>스웨덴 ‘속도와의 전쟁’

지난달 1일(현지 시간) 스웨덴 린셰핑시의 한 왕복 2차로 도로. 제한 최고 속도인 시속 30km를 넘긴 버스 한 대가 들어섰다. 주변에 학교와 유치원이 있어 속도를 낮게 지정한 것을 어긴 것이다. 그런데 도로가 10cm가량 스스로 땅속으로 내려앉았다. 스웨덴의 교통기술 개발업체 ‘에데바’가 2016년 개발한 내려가는 과속 방지턱 ‘액티범프’다. 과속한 차량 운전자에게 진동과 충격을 줘 스스로 속도를 줄이게 만든다. 차량 속도가 규정을 준수하면 액티범프는 평평한 상태를 유지한다.

○ 내려가는 과속방지턱으로 도심 속도 줄여
지난달 1일(현지 시간) 스웨덴 린셰핑시에서 에데바의 카린 비클룬드 마케팅매니저가 도로에 설치한 속도 감속 장치 ‘액티범프’를 소개하고 있다. 액티범프는 제한 최고 속도를 넘어 빠르게 달리는 차를 감지해 노면 깊이를 일부러 낮춰 운전자가 속도를 줄이도록 유도한다. 린세핑=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지난달 1일(현지 시간) 스웨덴 린셰핑시에서 에데바의 카린 비클룬드 마케팅매니저가 도로에 설치한 속도 감속 장치 ‘액티범프’를 소개하고 있다. 액티범프는 제한 최고 속도를 넘어 빠르게 달리는 차를 감지해 노면 깊이를 일부러 낮춰 운전자가 속도를 줄이도록 유도한다. 린세핑=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액티범프는 도심의 차량 속도를 줄여 차량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고안됐다. 차량이 15∼20m 정도로 가까워지면 레이더를 이용해 속도를 확인하고 작동 여부를 결정한다. 보행자 통행이 잦아 차량의 과속을 예방해야 하는 도로에서 유용하다. 운전자에게도 제한 최고 속도를 지키면 차량 흐름이 원활해진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불필요하게 급히 속도를 줄일 필요가 없으니 서행으로 인한 탄소 배출 증가도 막을 수 있다.

반면 과속을 한 운전자는 액티범프로 인해 차가 심하게 덜컹거리는 충격을 느껴 과속의 위험성을 몸으로 깨닫게 된다. 운전자들의 학습효과를 이용한 일종의 ‘상벌 시스템’이다. 카린 비클룬드 에데바 마케팅매니저는 “제한 최고 속도를 지키면 충격을 느낄 필요가 없어 규정 속도를 지킨 운전자는 ‘상’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운전을 하며 자연스럽게 규정 속도를 지키도록 유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스웨덴 린셰핑시의 액티범프가 설치된 도로의 약 100m 앞에 설치된 경고 표지판. 린셰핑=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스웨덴 린셰핑시의 액티범프가 설치된 도로의 약 100m 앞에 설치된 경고 표지판. 린셰핑=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실제 액티범프의 효과는 상당했다. 2016년 5월 액티범프가 설치된 곳에서 과속 차량 비율은 설치 전 80%에서 설치 후 30%로 줄었다. 올 4월에는 지점별로 5∼10%에 머물렀다. 액티범프는 도심 차량 속도를 낮추는 해결책으로 주목받으면서 스웨덴 말뫼를 비롯해 호주에도 수출됐다.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도 조만간 설치될 예정이다.

○ 국민 설득으로 속도 줄인 프랑스

지난달 1일(현지 시간) 스웨덴 린셰핑시의 한 도로에 설치된 액티범프가 제한최고속도를 넘어 달리는 차량을 감지하고 노면 높이를 낮추고 있다. 이를 통해 운전자가 속도를 줄이는 효과를 낼 수 있다. 린셰핑=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지난달 1일(현지 시간) 스웨덴 린셰핑시의 한 도로에 설치된 액티범프가 제한최고속도를 넘어 달리는 차량을 감지하고 노면 높이를 낮추고 있다. 이를 통해 운전자가 속도를 줄이는 효과를 낼 수 있다. 린셰핑=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유럽은 ‘자동차의 대륙’으로 불린다. 유명한 자동차 제조사들과 독일의 무제한 고속도로인 ‘아우토반’에서 차들이 빠르게 다니는 모습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최근 유럽은 교외 지역에서도 차량 속도를 줄이는 경우가 늘고 있다. 유럽연합(EU) 산하 유럽교통안전위원회(ETSC)에 따르면 프랑스는 올 7월 1일부터 중앙분리대가 없는 왕복 2차로 고속도로의 제한 최고 속도를 시속 90km에서 80km로 줄였다. 10월 29일(현지 시간) 벨기에 브뤼셀 ETSC 본부에서 만난 도빌러 아드미나이터 ETSC 연구원은 “속도 하향은 40만 km가 넘는 도로의 표지판을 모두 바꿔야 하는 큰 작업이었지만 매년 프랑스 교통사고 사망자의 55%가 중앙분리대가 없는 왕복 2차로 도로에서 발생하기에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프랑스 정부가 처음 속도 하향 방침을 발표했을 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운전자의 반발이 심했다. 교통 정체가 심해지고 불편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프랑스 정부는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설명했다. 차량 속도를 시속 10km 줄이면 매년 교통사고 사망자를 약 400명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했다. 차량 흐름이 원활하면 속도를 시속 10km 줄여도 통행시간은 크게 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속도 하향의 효과를 영화로 제작하기도 했다. 더들리 커티스 ETSC 커뮤니케이션 매니저는 “프랑스와 이웃한 벨기에에서도 속도 하향으로 교통 흐름이 개선돼 오히려 이동 시간이 준 게 확인됐다”고 말했다.
10월 29일(현지 시간) 벨기에 브뤼셀 유럽교통안전위원회(ETSC)에서 더들리 커티스 커뮤니케이션 매니저가 유럽연합(EU) 회원국의 속도하향 정책을 소개하고 있다. 린셰핑=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10월 29일(현지 시간) 벨기에 브뤼셀 유럽교통안전위원회(ETSC)에서 더들리 커티스 커뮤니케이션 매니저가 유럽연합(EU) 회원국의 속도하향 정책을 소개하고 있다. 린셰핑=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이런 노력에 힘입어 프랑스 정부는 운전자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프랑스 외에도 노르웨이와 네덜란드, 덴마크, 스위스 등 다른 유럽 국가들도 시속 90km이던 교외 도로의 제한 최고 속도를 시속 80km로 줄였다. 벨기에의 플랑드르 지역은 지난해 시속 90km이던 도로의 제한 최고 속도를 프랑스보다 10km 더 낮은 시속 70km로 줄이기도 했다. 게다가 파리, 브뤼셀 같은 대도시 도심 일반도로의 제한 최고 속도는 한국의 시속 60km보다 낮은 시속 40, 50km로 운영하고 있다. 속도 하향은 한 해 인구 10만 명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2, 3명에 그치는 유럽 국가의 교통안전 비결인 것이다.

김상옥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국내에서도 차량의 속도를 낮추는 ‘안전속도 5030’ 정책을 추진 중인 가운데 교통 정체 우려 등 여러 의견이 나오고 있다. 속도 하향 정책을 운전자에게 무조건 따르라고 강요하기보다 프랑스 정부의 사례처럼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하는 소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전속도 5030은 도심의 차량 속도를 시속 30∼50km로 낮추는 사업이다.

린셰핑·브뤼셀=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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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속도와의 전쟁#과속하면 도로 내려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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