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세진]파괴적 혁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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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혁신 이론의 대가이면서 ‘파괴적 혁신’ 이론의 창시자로 불리는 클레이턴 크리스텐슨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젊은 시절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 일명 모르몬교 신도로 1970년대 초에 부산에서 선교사로 있었다. 하루는 선교 활동 중에 너무 더워 부채를 부치고 있는데 옆에서 삼성전자 선풍기 바람이 불어 기술의 고마움을 절실히 느낀 적이 있다고 했다. 혁신이란 게 엄청난 게 아니라 소비자가 당장 필요로 하는 제품을, 살 수 있는 적당한 가격으로 공급하는 것이라면서 든 체험 사례다.

▷기술혁신이라면 흔히 이 세상에 없는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파괴적 혁신’은 이런 상식을 깨는 데서 시작한다. 1970년대 한국에서 더위를 식힐 인공지능 에어컨이 나왔다고 해도 그 제품을 살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당시 구매력을 감안하면 선풍기가 가장 많이 팔릴 수 있는 ‘파괴적 혁신’ 제품이었다.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포니 자동차를 싼값에 만들어 미국 캐나다 시장에 수출해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것 역시 ‘파괴적 혁신’의 전형적 사례로 꼽힌다. 믿기 힘들겠지만 포니는 1987년에 일본 도요타 닛산 혼다를 누르고 미국 시장 수입 소형차 판매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기업 마케팅 차원에서는 최첨단 기술을 집약해 최고 성능의 제품을 내놓는 것만이 ‘파괴적 혁신’은 아니다. 아마존이나 넷플릭스처럼 전자상거래, 콘텐츠 유통에서 전 세계를 석권하는 기업도 따지고 보면 별 기술이 있는 것은 아니다. 고객이 원하는 것을 재빨리,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것일 뿐이다. 문제는 고객의 요구를 매개로 지갑을 여는 것과 기술의 접점을 찾는 것이다.

▷크리스텐슨 교수의 최근작 ‘번영의 역설’을 원용하면 부자들의 재산을 모두에게 나눠 성장을 이루겠다는 미국 민주당의 생각이 틀린 것처럼 한국에서도 검증되지 않은 소득주도성장 이론으로 일자리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하긴 어렵다. 그보다는 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을 기업들이 자유롭게 만들 수 있도록 ‘파괴적 혁신’의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기업뿐만 아니라 국가 번영의 지름길이다.
 
정세진 논설위원 mint4a@donga.com
#파괴적 혁신#클레이턴 크리스텐슨#기술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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