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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숙 “세계 호령했던 여자농구, 그 열정 아직 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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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숙 “세계 호령했던 여자농구, 그 열정 아직 생생”

김종석 기자 입력 2018-12-06 03:00수정 2018-12-0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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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숙 WKBL 재정위원장 50년 농구인생 담은 자서전 펴내
1979년 세계선수권 은메달 따고 은퇴 후에도 코트에 바친 삶 그려
1970년대 대표적인 농구스타 강현숙 한국여자농구연맹(WKBL) 재정위원장이 자신의 자서전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1967년 중학교 2학년이었던 그는 지지직거리는 소음 너머로 들리는 라디오 농구 중계에 귀를 쫑긋 세웠다. 박신자를 앞세운 한국 여자농구대표팀이 은메달을 딴 프라하 세계선수권 경기 중계였다. 한국 스포츠 사상 첫 구기종목 세계대회 메달이었다. 이 쾌거에 감동한 소녀는 앨범에 박신자 소식을 다룬 신문 스크랩을 끼워 넣고 ‘박신자 선수와 같이 훌륭한 선수가 되기 위해 피눈물 나는 노력을 하자’고 다짐하는 글을 써 넣었다. 그 꿈은 이뤄졌다. 12년 뒤 그는 1979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의 준우승을 이끌며 ‘베스트5’에도 선정됐다.

주인공은 강현숙 한국여자농구연맹(WKBL) 재정위원장(63)이다. 1970년대 실력과 미모를 겸비한 최고 농구 스타였던 강 위원장은 최근 자신의 반 백 년 농구 인생을 담은 ‘나는 국가대표 포인트가드’(새로운 사람들)라는 자서전을 펴냈다. 국내 여성 농구인의 자서전 1호다.

5일 만난 강 위원장은 “온 가족이 뭉쳐 이뤄낸 일이다. 기자 출신인 남편이 쉰을 바라볼 즈음 간암에 걸려 생사의 기로에 섰었다. 건강을 되찾은 남편이 당시 곁에서 힘이 돼 주었다며 감사의 의미로 나의 자서전 발간을 주도했다. 책은 며칠 전 결혼 38주년 기념일에 처음 받았다”고 말했다. 책 표지 디자인과 삽화는 미국 뉴욕에서 애니메이션을 공부한 막내딸 김의민 씨가 맡았다. 다른 두 딸도 수시로 책 내용을 검토하며 거들었다.


서울 광희초등학교 5학년 때 농구를 시작한 강 위원장은 부친의 사업 부도로 산동네에서 어렵게 살면서도 태극마크를 향해 정진했다. “새벽에 닫혀 있는 교문을 넘어 들어가 개인 운동을 했어요. 잘 때도 공을 팔에 껴안았죠. 방과 후 산비탈 집까지 계단을 뛰어서 올라갔어요. 동네 작은 댓돌 위에서 드리블 연습을 했어요.”

18세 때인 1973년 처음 대표팀에 발탁된 그는 1978년 방콕 아시아경기 금메달 주역이 됐다. 1980년 은퇴 후 큰딸과 쌍둥이 두 딸 등 세 자녀를 키우면서도 코트와의 인연을 유지했다. 여성으로는 사상 첫 한국농구연맹(KBL) 심판위원장을 지냈다. 평생을 바친 농구코트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녹아 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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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숙#한국여자농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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