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지타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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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는 직장 내 다양한 괴롭힘(harassment)을 가리키는 용어로 ‘…하라’ 시리즈가 존재한다. 상하 관계를 악용하는 권력형 갑질은 ‘파워하라(power harassment), 성희롱은 ‘세쿠하라(sexual harassment), 회식 등에서의 음주 강요는 아루하라(alcohol harassment)라고 불린다. ‘2018 신조어 유행어 대상’ 후보에 오른 ‘지타하라(時短 harassment)’도 그중 하나다. ‘지탄(時短)’이란 노동시간 단축을 뜻한다.

▷장시간 노동과 과로사를 막기 위해 정부가 추진하는 ‘일하는 방식 개혁’과 관련된 노동시간 축소는 왜 ‘지타하라’로 불리는 것일까. 모든 업무량은 그대로인데 상사는 무작정 ‘잔업도 야근도 하지 말라’고 지시하기 때문이다. 2016년 12월 한 자동차 판매 회사의 점장으로 취임한 48세 가장이 부하 일까지 떠맡아 과중한 업무 부담에 시달린 끝에 목숨을 끊으면서 노동시간 단축은 사회문제로 부각됐다. 지난해 한 서점이 20∼60대 직장인 73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명 중 4명이 ‘지타하라’에 시달리고 있다고 답했다.

▷최저임금 과속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 달라지는 직장문화의 급류에 휩쓸린 한국 사회인지라 이런 상황이 왠지 강 건너 불로 보이지 않는다. 더불어 예상보다 빠르게 닥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응하는 일 역시 만만치 않다. 지난달 미국 뉴욕에서는 우버 같은 차량공유 회사에 떠밀려 생활고에 허덕이던 50대 한인 택시 운전사가 자살했다. 4년 넘게 택시를 몰던 그는 지난해 거금(약 6억4600만 원)을 들여 택시면허를 사들였지만 손님은 뜸하고 경제적 부담이 커지면서 막다른 선택에 몰린 듯하다.

▷격변하는 세상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면 사회와 일터의 변화를 직시하고 대처법을 찾아내야 한다. 우리 사회에도 상사와 부하 사이에 낀 중간 관리직이나 몸과 마음이 지친 4050세대 중에 시대와 발걸음을 맞추지 못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이들이 적지 않다. 사는 일이 버거운 이들을 보듬는 배려와 관심, 지금 우리에게도 절실한 상황이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지타하라#장시간 노동#과로사#근로시간 단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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