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명건]검찰은 법원을 걱정해야 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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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건 사회부장
이명건 사회부장
지난달 20일 오후 11시 50분경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주말 야근 후 자택에서 뇌출혈로 숨진 이승윤 서울고법 판사(42·여) 빈소 앞에 문상객 여러 명이 줄지어 섰다. 빈소에서 문무일 검찰총장과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20분가량 유족과 대화를 하는 동안 조문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

빈소에서 나온 문 총장은 눈물을 쏟았다. 윤 지검장의 눈시울도 붉었다. 문 총장은 “너무 안타깝다”고, 윤 지검장은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늘 격무에 시달리는 판사와 검사들의 실상을 잘 알기 때문에 동병상련을 느꼈을 것이다. 어쩌면 법원행정처의 재판 개입 및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으로 판사들을 수사 중이라 더 마음이 아렸을지 모른다.

8일 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앞. 출근하는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에게 기자들이 김명수 대법원장 차량에 대한 화염병 투척 사건과 ‘사법 불신’의 연관성 여부를 물었다. 그런데 안 처장은 다른 언급 없이 검찰의 법원 수사를 비판했다. “명의(名醫)는 환부를 명확하게 지적해 단기간에 수술해 환자를 살린다”고 말했다. 또 “아무리 병소(病所)를 많이 찾는다고 하더라도 해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검찰이 너무 오래 법원 내부를 광범위하게 파헤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게 국민의 사법 불신을 부추겼고, 그 결과 화염병 사건이 발생했다는 주장이었다. 평소 답답할 정도로 단어 하나, 문구 한마디에 신중했던 안 처장의 태도를 감안하면 작심한 것으로 봐야 한다.

안 처장은 김 대법원장의 최측근이다. 김 대법원장 대신 국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한다. 그래서 안 처장 발언엔 김 대법원장의 의중이 실려 있다고 하는 게 타당하다. 앞서 6월 ‘검찰 수사 협조’ 방침을 밝혔던 김 대법원장이 다섯 달여 만에 검찰 수사에 불만을 나타낸 것이다.

검찰은 지금까지 민일영 전 대법관과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차한성, 박병대, 고영한 전 대법관을 소환 조사했다. 이들을 포함해 피의자나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에 불려간 전현직 판사는 1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구속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공소장에 따르면 재판 개입 등의 의혹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전현직 판사는 93명이다. 검찰은 다음 주 박병대, 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이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소환 조사할 예정이다. 검찰 안팎에선 현직 대법관 일부도 소환 대상으로 거론된다.

지난주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선 의혹 관여 판사들에 대한 ‘탄핵소추 검토’가 의결됐다. 회의에서 거론된 탄핵 검토의 주요 근거는 임 전 차장 공소장에 나오는 검찰 수사 내용이었다. 이후 법원 내부는 회의 의결 절차와 법관 대표들의 대표성 문제를 놓고 심각한 내홍에 휩싸였다.

김 대법원장의 불만이 지나친 건 아니다. 하지만 키는 검찰이 잡고 있다. 이미 수사는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었다. 법원 불만에 휘둘릴 상황이 아니다. 조만간 검찰은 임 전 차장 외에 추가로 재판에 넘길 전현직 판사들을 결정한다. 수사 성패의 관건은 그 기준을 얼마나 높일지에 달려 있다. 직권남용 등의 혐의가 분명한, 지시를 내리고 보고를 받은 책임자로 기소 대상을 국한해야 한다. 봐주라는 게 아니다. 절제하라는 것이다. 무죄 선고를 막아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 의혹이 제기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그게 바로 수사 책임자 윤 지검장이 말했던 ‘법원을 살리기 위한 수사’다. 문 총장과 윤 지검장은 이 판사의 빈소에서 했을 법원 걱정을 멈추면 안 된다. 그래야 ‘사법부 주류 교체를 위한 무리한 수사’ 논란에서 벗어나 성공한 수사로 평가받을 수 있다.
 
이명건 사회부장 gun43@donga.com
#검찰#법원#법관 탄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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