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시험, 우리가 결국 해냈습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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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t 엔진 시험발사 성공 이끈 3인

28일 이뤄진 시험발사체 발사를 이끈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주역들이 시험발사체 사진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전영두 발사체체계종합팀장, 조기주 발사체추진기관체계팀장, 한영민 엔진시험평가팀장.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28일 이뤄진 시험발사체 발사를 이끈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주역들이 시험발사체 사진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전영두 발사체체계종합팀장, 조기주 발사체추진기관체계팀장, 한영민 엔진시험평가팀장.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피 말리는 일정과의 싸움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이번에 시험발사체를 성공적으로 발사했지만, 2년 3개월밖에 남지 않은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 발사까지 긴장을 풀 수 없습니다.”

2021년 발사 예정인 누리호의 액체엔진 시험발사를 마친 다음 날인 29일 오전,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한영민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엔진시험평가팀장과 조기주 발사체추진기관체계팀장, 전영두 발사체체계종합팀장을 만났다. 각각 엔진과, 엔진에 추진제 공급계통을 포함한 추진기관, 그리고 발사체 전체 조립을 책임진 실무 팀장들이다. 이들은 “지난 개발 과정에서 피를 말리는 시간 싸움을 했다”며 “성공의 기쁨도 잠시고, 곧바로 다음 연구에 돌입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래서일까. 전날 성공에 축배라도 들었을 법한데 목소리와 표정이 다들 너무 차분했다. 인터뷰 시간은 오전 8시 40분에 잡혔다. 한 시간 뒤에 바로 회의를 해야 한다고 했다. 전날 오후 있었던 시험발사의 데이터를 바로 분석한단다. 큰일 마쳤는데 쉬지 않느냐고 했더니 전 팀장은 “이미 오전 일찍부터 조립동에서는 발사체 3단의 조립이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시험발사의 주역들은 이렇게, 발사 다음 날부터 바빴다.

이번 발사를 지켜본 소감을 물었다. “숙원을 이뤘죠.” 이번에 가장 주목을 받은 75t급 엔진을 맡았던 한 팀장은 “15년 전에 설계한 작은 분사기가 진짜로 커다란 엔진이 돼 날아간 게 믿기지 않는다”며 웃었다. 그는 2003년 나로호 개발과 동시에 30t급 엔진을 추가로 연구하며 산화제와 연료를 섞어 화염을 내는 ‘분사기’를 개발했다. 이 분사기는 약 0.1t의 추력을 낸다. 15년 뒤, 시험발사체에는 이 분사기가 720개 들어가 75t의 추력을 냈다. 한 팀장은 “이번에 성공한 75t 엔진이 하루아침에 된 게 아니다”며 “항우연뿐만 아니라 산업체가 오래 함께하며 이룬 성과”라고 강조했다.

공교롭게도, 28일 발사된 시험발사체는 정확히 16년 전 발사된 한국 최초의 액체추진 소형 과학로켓 ‘KSR-3’와 발사일이 똑같다. 조 팀장은 “세 사람 모두 KSR-3 때부터 발사체와 인연을 맺어 왔다”고 말했다. 한 팀장은 2000년부터, 조 팀장과 전 팀장은 2002년부터 발사체 개발에 참여했다.

가장 큰 어려움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조 팀장은 잠시 망설이다 다시 ‘촉박한 일정’을 꼽았다.

“개발 일정이 미뤄지면서 마음을 졸였습니다. 추진기관 종합연소시험 일정은 고정돼 있는데 앞서 완료돼야 할 개발 일정이 뒤로 밀렸어요. 그래서 하나의 추진기관으로 올해 5, 6, 7월에 각각 한 번씩 종합연소시험을 거쳐야 했습니다. 가장 어려운 시험을 하나의 추진기관으로 석 달에 세 번 시험하는 일은 유례없는 일입니다.”

다행히 3차 연소시험에서 엔진이 목표보다 긴 시간 안정적으로 연소하는 데 성공하며, 이후 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조 팀장은 “러시아도 불가능한 시험이라고 고개를 저었는데, 효율성을 높여 결국 해냈다”며 “우리의 기술이나 지식이 결코 선진국에 뒤지지 않는다. 뒤지는 것은 경험뿐인데 이제 경험도 얻었다”고 말했다.

일정이 빡빡하다 보니 연구원들이 휴가도 마음껏 가지 못하는 게 가장 안타깝다고 했다. 한 팀장의 눈이 흔들렸다. “전날(28일) 발사 성공 뒤 팀원들이 다음 주 쉬면 안 되느냐고 밤부터 간절히 묻는데…, 원래는 3단용 7t 엔진 시험이 계속 예정돼 있거든요. 아직 답을 못 하고 있습니다.” 현재 나로우주센터 실험동에는 누리호 1단용 75t 엔진 11호기와 2단용 75t 엔진(공중 발사 때문에 1단 엔진보다 노즐이 길다), 3단용 7t 엔진 4호기가 설치돼 있다. 엔진 개발 및 제작과 동시에 시험이 매주 여러 차례 진행되고 있다. 팀장들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조 팀장은 “올해 휴가를 3일 썼다”며 “그나마 하루는 가족 행사(제사)로 빠졌고 쉰 것은 이틀뿐”이라며 웃었다.

이들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더욱 효율적으로 써서 누리호 완성을 차질 없이 이룩하겠다고 말했다. 전 팀장은 “당장 이번 발사를 통해 얻은 데이터를 부서별로 세밀하게 분석하는 작업을 시작할 것”이라며 “할 일은 더 많고 시간은 짧은 만큼 여러 일을 동시에 진행하며 시간을 줄여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발사체의 성공은 눈부시지만, 그걸 성공시킨 엔지니어들의 삶은 고되다. 대전에서 여러 시간이 걸리는 나로우주센터까지 장거리 출장도 잦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다 진승보 항우연 발사체기획조정팀장을 만났다. “젊은 연구자들이 많이 힘들어합니다. 이들의 노고를 위로할 방법이 있으면 좋겠어요. 젊은 연구자가 발사체 연구 현장을 떠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성공에 취해 잠시 보이지 않던 연구원들의 노고가 뚜렷하게 보이는 순간이었다.
 
고흥=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누리호#액체엔진 시험발사#나로우주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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