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차진아]경제정책과 정부에 대한 신뢰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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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정부 현실 인식에 높아진 불신… 신뢰 약화는 정책 성공 더 어렵게 해
주52시간 근로 등 정부 경제정책 객관적 재평가로 신뢰 회복하고
대안 수용으로 악순환 고리 끊어야

차진아 객원논설위원·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차진아 객원논설위원·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국회 시정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세계가 우리의 경제 성장에 찬탄을 보냅니다. 우리 스스로도 자부심을 가질 만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다수 서민이 피부로 느끼는 경제 상황은 이와 거리가 멀다. 찬탄보다는 비탄이, 자부심보다는 자괴감이 서민들의 가슴속에 가득 차 있다. 대통령과 정부의 현실 인식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경제를 평가하는 각종 지표와 그 상호관계 및 변화 추이에 대해 경제 전문 지식이 없는 일반 국민은 잘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같은 경제 비전문가가 경제 상황에 대해 한마디 하게 되는 것은 현실과 정부 발표 사이에 괴리가 커질수록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가 약화되고, 이는 다시 경제정책의 성공을 더 어렵게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로 빠져들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경제정책의 성공은 그 정책 효과에 대한 시장의 신뢰에 달려 있다는 점은 상식이다. 시장은 결국 국민(개인과 기업)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정부 정책은 국민이 신뢰할 때 비로소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거꾸로 정부 정책을 신뢰하지 못할 때는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성공하기 어렵다. 그런데 정부는 시장의 정상적인 흐름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일시적 예산을 투입하거나 압력을 가하는 것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났는가.

정부의 청년 일자리정책을 보자. 기업이 고용을 늘릴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아니라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서 일자리를 억지로 만들려 했다. 정부는 나름의 성과가 있다고 말하지만, 청년들이 체감하는 현실과는 큰 차이가 있다. 또한―지속가능성의 문제는 접어두고라도―투입한 예산에 비해 실제 성과는 미미하다는 점은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하위 소득계층을 위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도 마찬가지다. 최저임금 인상의 필요성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상론을 앞세워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을 강력하게 추진한 결과는 무엇인가. 최저임금 노동자 상당수의 일자리 상실, 그 노동력에 의존하던 영세 소상공인들의 잇따른 폐업과 소득 감소 등 부작용이 두드러지는 것은 예견할 수 없었던 일인가.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하는 것도 그렇다. 한편으로는 저녁 있는 삶을 보장하려는 것으로 높이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줄어든 소득을 메우기 위해 오히려 저녁에 대리기사 등 투잡, 스리잡을 뛰어야만 하는 영세 기업 근로자들이 있다. 이것이 저소득 노동자의 현실을 제대로 고려한 정책이라 할 수 있는가. 대기업 사원 중에서는 이를 환영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그러면 이 정책은 그들을 위한 정책인가.

정부 경제정책들의 목표가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목적이 정당하다고 모든 수단이 다 정당한 것은 아니다. 목적 달성에 얼마나 효과적인 수단인지, 그 과정에서 오히려 다른 문제를 확산시키는 부작용은 없는지 사전에 충분하고 정교한 시뮬레이션과 검토 및 보완을 했어야 했다. 그런데 이를 너무 간과한 것 아닌가.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이 한 가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산 정상에 오르는 길은 여러 개다. 더 빨리 갈 수 있지만 전문적인 등산가가 아니면 가기 어려운 길도 있고, 더 시간이 걸리지만 일반인도 갈 수 있는 쉬운 길도 있듯이, 정책을 추진할 때도 현실에 맞는 방법을 골라야 한다. 여러 대안에 대한 충분한 비교평가가 선행돼야 한다. 이는 이념의 문제가 아닌 합리성의 문제다.

정책의 비판에 대해 정부는 “과거 방식으로 돌아가자는 말이냐” “개혁을 반대하는 것이냐”와 같은 반응을 보이곤 한다.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을 마치 지향하는 목표 자체를 반대하는 것처럼 단정하면서 합리적인 대안을 수용하지 않으려 한다. 정부는 스스로 입안한 정책을 지고지순한 것, 절대선으로 여기는 것 같다.

이제라도 정부는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경제정책의 근본 방향과 구체적인 성과 및 문제점에 대해 객관적으로 재평가하고 이를 국민과 공유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합리적인 대안을 수용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할 것이다.
 
차진아 객원논설위원·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청와대#경제정책#주52시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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