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박선희]운 중에 최고 운은 ‘옆자리 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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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희 문화부 기자
박선희 문화부 기자
공연을 관람하다 보면 작품 수준과 무관하게 주변 사람들로 인해 공연의 성패가 결정되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이른바 ‘좌석 운’이 영 따라주지 않는 경우다. 스마트폰의 환한 불빛을 드러내며 메시지를 확인하거나 부주의하게 앞좌석을 툭툭 치는 정도는 애교다. 얼마 전 연극을 보러 대학로 소극장을 찾았다. 공연 시작 전 기분 좋던 설렘은 옆자리에 술 냄새를 진탕 풍기는 관객이 앉으며 날아가 버렸다. 개의치 않으려 애썼지만, 커튼콜 때까지 진동하는 냄새에 쾌적한 관람이 무척 어려웠다.

작품성과 흥행성을 두루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 한 뮤지컬을 관람할 때는 뒷자리 관객들이 공연 내내 ‘생중계’를 쏟아냈다. “지금 저 장면 실수한 것 아니야?” “대사가 너무 빨라” 등 굳이 목소리를 낮추려는 노력도 없었다. 거리낌 없이 수다 떨며 웃어댈 때마다 공연의 감동은 반감됐다.

심지어 한 공연장에서는 양반다리를 한 여성 관객 옆에 앉는 불운도 겪었다. 뭔가 부대껴서 봤더니, 신발까지 벗고 편안히 가부좌를 틀어 무릎이 내 자리까지 튀어나와 있었다. 그는 시종일관 웃으며 즐겁게 관람을 했지만, 당하는 입장은 사뭇 난감했다.

이런 경험이 쌓이다 보니 좌석 등급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진정한 VIP석’은 ‘양식을 갖춘 주변 관객들이 있는 바로 그곳’이 아닌가 싶어진 것이다. 아무리 값이 비싸고 무대에서 가깝고 시야가 좋은들 운 나쁘게 이런 이들을 만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적지 않은 티켓 가격을 지불하고 기껏 시간을 내서 왔는데 부주의한 관객 때문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이 또 있을까.

공연 관람이 즐거운 이유는 그곳이 ‘살아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무대가 살아 있고 배우들이 살아 있고 관객들이 살아 있다. 모든 게 생동하는 열기로 가득하며 서로 상호 작용한다. 배우가 관객에게 에너지를 주듯 관객의 에너지도 서로에게 전달된다. 매너를 지키며 함께 작품에 몰입할 때 공연은 몇 배나 더 즐거워진다. 반대의 경우 불쾌한 경험이 되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연말 성수기를 맞이한 공연계는 연극부터 뮤지컬, 무용까지 볼만한 작품들이 어느 때보다 풍성하다. 공연 관람 문화가 성숙하고 있다지만 여전히 이렇게 아쉬운 경험을 토로하는 이들이 많다. 큰마음 먹고 나선 연말 공연 관람을 기분 좋게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배려’가 필요한 때다. 성공적인 공연을 만드는 건 객석의 매너에도 달려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말이다.
 
박선희 문화부 기자 teller@donga.com
#관크#공연 매너#객석 매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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