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유럽순방서 제재 완화 띄우자… 美 “딴소리 차단” 작심 제동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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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오 “비핵화-남북관계 병행”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20일(현지 시간) 워싱턴 국무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한미 워킹그룹의 첫 회의가 열린
 이날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 비핵화가 남북관계 증진보다 후순위가 아니라는 점을 한국 측에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워싱턴=AP 
뉴시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20일(현지 시간) 워싱턴 국무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한미 워킹그룹의 첫 회의가 열린 이날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 비핵화가 남북관계 증진보다 후순위가 아니라는 점을 한국 측에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워싱턴=AP 뉴시스
“미국의 외교 수장이 동맹국에 한 표현치곤 지나치게 비외교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워싱턴의 한 싱크탱크 관계자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20일(현지 시간) 기자회견 발언을 이렇게 평가했다. “북한 비핵화가 남북관계 증진보다 후순위가 아니라는 점을 한국에 분명히 했다”는 그의 발언이 우리 정부의 ‘남북관계 과속’에 작심하고 제동을 건 것이라고 본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 남북 간 유대 확대에 경고의 목소리를 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폼페이오 장관은 워싱턴과 서울의 의견이 ‘완벽히 일치한다’고 말했지만, 기자회견 발언은 가까운 동맹과 잠재적으로 단절될 수 있다는 미국의 우려를 강조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 비핵화의 핵심 전략으로 두고 있는 ‘최대의 압박’을 한국 정부가 흔들고 있는 상황을 계속 방치할 경우 북한 비핵화가 어렵게 되고, 결과적으로 한미동맹까지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표출된 것으로 본 것이다.

로이터통신을 비롯한 주요 언론은 폼페이오 장관의 강경 발언의 배경으로 미국과 충분한 사전 논의 없이 한미 연합군의 군사활동까지 제한하는 9·19 남북 군사합의를 북한과 한 점과 문재인 대통령이 10월 유럽 순방에서 ‘비핵화를 전제로 한 대북제재 완화’를 강조했던 일을 꼽았다. 당시 폼페이오 장관은 남북 군사합의에 대해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항의성 전화를 했다고 강 장관도 국회에서 인정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의 제재 완화 발언에 대해 미 국무부는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 이후 제재 완화가 이뤄질 것이라는 점을 매우 명확히 해왔다”고 논평하기도 했다. 강 장관의 ‘5·24조치 해제 검토’ 발언에 대해선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나서 “우리 승인 없이 한국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회견을 통해 한국의 ‘독단적 행동’ 가능성을 분명하게 경고했다. 그는 “상대방이 모르거나 의견과 생각을 제공할 기회를 갖지 못한 상태에선 우리나 한국이 단독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워싱턴 외교가는 ‘내가 분명히 말했으니 앞으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결국 이날 출범한 한미 워킹그룹도 비핵화와 남북관계 문제의 실무적 조율을 위해 탄생했지만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서는 한국 정부 독단으로 남북관계 개선 조치를 진행시키지 못하도록 하는 안전장치를 확보한 셈이다.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을 통해 북한 비핵화 해법을 놓고 그동안 한미 간에 동상이몽이 있었다는 점도 확인됐다. 우리 정부는 그간 “남북관계 개선을 동력으로 북한 비핵화를 견인하겠다”며 “미국도 우리 정부의 중재자 역할에 동의하고 있다”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미국은 우리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 노력이 순기능보다 압박을 느슨하게 만드는 부작용이 더 크다고 보고 있다.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은 “한국 정부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비핵화의 진심이 있다고 믿고 있지만 북-미 협상을 책임지고 있는 폼페이오 장관은 ‘자발적 비핵화는 없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시각차가 대북정책에 있어 근본적 차이를 만들어 내고 결과적으로 동맹관계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며 “한국이 멈추려 하지 않자 (미국이) 확실하게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라고 분석했다.

관건은 한 달에 한두 번 정례적으로 열리는 워킹그룹을 통해 대북정책의 잡음을 완벽하게 제거할 수 있을지 여부다. 한국은 외교부를 주축으로 청와대와 통일부 실무자들이 합류했고, 미국은 국무부를 주축으로 백악관과 재무부의 북한 담당자들이 대거 참여해 실질적인 논의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첫 회의에서 우리 측은 남북철도연결사업과 관련해 “북한에 실질적인 경제혜택을 주는 사업이 아니다”라고 강조했고, 미국도 이에 원칙적으로 동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워싱턴=박정훈 특파원 sunshade@donga.com
#폼페이오#북한#비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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