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 뒤바꾸고 문제중복 재시험… 취준생 분통 터지는 ‘공채 대행’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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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채용대행사 시험관리 엉망


“초등학교 경시대회도 이렇게 엉망으로 관리하지는 않을 거예요.”

취업준비생 양모 씨(27·여)의 말에서는 억울함과 분노가 묻어났다. 양 씨는 2년 동안 은행권 취업을 준비해 10월 A은행 공개채용 필기시험을 치렀다. 하지만 시험 관리는 주먹구구식이었다. 시험 날 입실 완료 시간은 오전 9시 30분이었지만 감독관은 시간을 넘겨 들어온 응시생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시험장에 시계가 없다며 휴대전화로 시간을 보는 것을 허용하는가 하면 시험 시작 시간도 공지하지 않았다. 한 응시자가 임의로 문제를 풀기 시작한 것을 보고 다른 응시자들이 “문제를 풀어도 되느냐”고 질문하자 감독관은 “왜 아직도 안 풀고 있느냐”고 되물었다. 5월 실시된 B은행의 채용 필기시험에서도 입실 시간이 지난 뒤 응시생의 입실을 허용하고, 제한 시간을 넘긴 응시생의 답안지를 받아줘 논란이 일었다.

최근 금융기관과 공공기관 등의 채용비리가 적발되면서 인력 선발 과정의 공정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채용을 대행업체에 맡기는 ‘채용 외주’가 늘고 있다. 전국은행연합회는 6월 채용 외주를 권고하는 내용이 담긴 ‘은행권 채용절차 모범규준’을 마련하기도 했다. 공정성 시비를 줄이기 위해 국가직무능력표준(NCS) 제도를 도입하는 공공기관과 공기업도 많아지는 추세다. 하지만 대행업체들의 허술한 운영으로 취준생들이 피해를 보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 허술한 시험 관리…합격자 뒤바뀌기도

10월 27일 오후 한국서부발전 채용 필기시험을 치른 수험생들은 11월 10일 예정에 없던 재시험을 치러야 했다. 10월 27일 출제된 문제의 절반가량이 같은 날 오전 실시된 한국남동발전의 필기시험 문제와 같았기 때문이다. 두 회사는 각자 다른 채용 대행업체에 외주를 줬는데, 두 회사가 같은 전문가에게 출제를 의뢰하면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

경기 고양시 산하기관인 고양지식정보산업진흥원도 7월 대행업체를 통해 치른 필기시험에서 사달이 났다. 대행업체 측은 응시생이 입실할 때가 다 돼서야 허겁지겁 시험지를 출력했고, 응시생의 신원 확인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시험지와 답안카드가 제때 전달되지 않아 시험은 예정보다 50분이나 늦어졌다. 응시생들의 불만이 커지자 진흥원은 두 달 만인 9월 8일 재시험을 치렀다.

채용 전반의 절차 관리도 허술한 경우가 있었다. 환경부 산하 국립생태원은 올해 6월 필기 합격자 명단을 번복했다. 대행업체가 필기 합격자 인원을 잘못 계산하는 바람에 당초 합격 판정을 받았던 9명이 이틀 뒤 불합격 통보를 받은 것. 2016년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채용에서도 평가기준을 잘못 적용해 일부 합격자와 탈락자가 뒤바뀐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지난해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 채용에서는 지원 제한 연령을 잘못 적용해 억울한 탈락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모두 대행업체에 채용 외주를 준 경우였다.

○ 문제 발생해도 책임 소재 모호

채용 대행업체들의 부실 관리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이들에 채용을 맡긴 기관과 기업들은 도의적 사과를 할 뿐 책임을 대행업체로 돌리기에 급급하다. 한국서부발전 관계자는 “위탁계약을 했기 때문에 대행업체의 책임”이라며 “수험생들에게 재시험 기회를 줬다”고 말했다. 국립생태원 역시 “우리가 전달한 사항을 채용 대행업체가 실수로 잘못 적용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현행 방식의 채용 외주로는 대행업체의 전문성을 담보하기 어려워 부실 관리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채용 외주를 발주하는 기관과 기업은 전문성과 비용을 고려해 대행업체를 선정한다고 하지만 전문성에 큰 차이가 없으면 가격이 싼 업체에 맡기게 된다. 수주 경쟁, 저가 위탁 등으로 인해 비용 절감이 중요해진 대행업체들은 시험 감독 등에 정직원이 아닌 미숙련 단기계약직을 동원하고, 결국 채용 관리의 질이 떨어지게 된다.

전문가들은 채용 외주 방식의 문제점을 보완해야 채용비리 근절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들이 외주를 통해 채용에 대한 책임을 피하려는 양상”이라며 “채용 과정의 공정성 확보라는 취지는 좋지만 외주화에 따른 문제점에 대한 보완책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공채#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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