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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불구불 철공소 골목마다, 예술이 숨어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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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불구불 철공소 골목마다, 예술이 숨어 있었네

김예윤 기자 입력 2018-11-09 03:00수정 2018-11-09 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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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예술 프로젝트가 바꾼 을지로
빈 점포 늘며 쇠락하던 미로골목, 구청서 젊은 예술가에 싸게 임대
사진작가-설치미술가등 25명 활동, “비싼 임대료에 투자 꿈도 못꿨는데
제품 품질 높이고 수익도 좋아져”, 시민 발길도 늘어 상권 활기
7일 서울 중구 을지로(산림동) 일대 골목에 작업실을 꾸린 청년예술가 6명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종호, 위은혜, 류송이, 김소정, 고대웅, 최현택 씨.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여긴가? 아, 아니다. 이 골목이네요.”

7일 서울 중구 을지로(산림동) 일대 골목. 여기저기서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나는 골목 안 가게의 간판들은 크기와 색상, 글씨체마저 비슷해 작정하고 찾아온 사람마저 길을 헛갈리기 십상이었다. 쇠막대기나 전선이 얽혀 있는 머리 위 하늘을 배경으로 반짝이는 은색 모빌이 나타났다. 안에서 기계 소리가 들리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회색이나 남색인 다른 가게 문과 달리 이곳의 문은 밝은 분홍색이었다. ‘프래그 스튜디오(Prag Studio)’다.

최현택 씨(28) 등 청년 3명이 이곳에 둥지를 튼 것은 2016년 1월이다. 2015년 말 중구 ‘을지로 디자인·예술 프로젝트’ 사업 1기에 선정된 것이 계기였다. 을지로 디자인·예술 프로젝트는 을지로 골목 내 빈 점포를 중구가 공모를 거쳐 청년예술가를 모집해 저렴한 비용으로 작업실 등 공간을 임대해주는 사업이다.

청년예술가가 연 작업실 중 한 곳인 ‘프래그 스튜디오’에서 직원이 제품을 만들고 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실용주의(Pragmatism)’라는 말에서 따온 가게 이름처럼, 이 공간에서는 폐품에 디자인을 더한 생활용품을 만들어낸다. 작은 모형들을 출력하고 있는 3차원(3D) 프린터 아래 상자에는 고운 하늘색 가루가 담겨 있었다. 폐플라스틱인 물병 뚜껑을 갈아 만든 가루다. 일부는 압축 공정 등을 통해 새 둥지 모양의 하늘색 전등으로 재탄생해 걸려 있었다. 재활용품에 디자인과 기술을 접목해 가치를 높인 업사이클링(up-cycling) 제품이다.

최 씨는 “이곳에 입주하기 전에 영등포구의 옥탑방에서 작업했는데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수익이 늘었다”고 말했다. 작업 공간은 3배 이상으로 넓어졌지만 구에서 임차료의 90%를 지원해줘 그 비용을 기계에 투자할 수 있었다. 가까운 곳에 을지로 인쇄골목과 금속 주조 공장, 방산시장 등 제품 작업에 필요한 시장이 밀집해 있다. 최 씨는 “인터넷이나 해외에서 부품을 주문할 때보다 시간도 아끼고 품질도 더 좋은 것을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연히 작업 효율성과 제품 완성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청년예술가들의 점포는 청년들뿐 아니라 칙칙하던 기존의 을지로 골목에도 생기를 불어넣었다. 올해 7월 들어선 일러스트레이터와 사진작가, 설치미술가 등 청년예술가 4명이 모인 ‘Den’은 이들의 작업 공간이기도 하지만 시민들에게 미술관 역할도 한다. 벽에는 전시회 포스터가 붙어 있고 자갈을 정갈하게 깔아둔 마당으로 통하는 대문은 항상 열려 있다. 작업실 옆에는 ‘밤의 모양’을 주제로 조도를 낮춘 별도의 공간에 이들 4명의 작품이 하나씩 전시돼 있다.

사진작가 이종호 씨(33)는 “요새 빈티지한 카페 등으로 떠오른 을지로 골목을 찾아왔다가 길을 헤매던 사람들이 ‘여기는 뭐 하는 데지?’ 하며 들어온다”면서 “사람이 많은 주말에는 하루에 10명까지도 들어왔다”고 말했다. 청년예술가들은 “임차료 때문에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따로 작업실을 가지는 건 엄두도 못 냈는데 이제 한 달에 한 번 전시회를 여는 것을 목표로 작업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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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는 전시회를 비롯해 시민들을 대상으로 사진 찍기나 서예 등 원데이 클래스도 열린다. 시민들뿐 아니라 오래된 을지로 골목 터줏대감 사장님들도 이웃이 됐다. 지역 연계 예술활동을 꿈꾸는 ‘R3028’ 대표 고대웅 씨(29)는 이웃 가게에서 만드는 제품의 사진을 찍어 온라인 판매를 돕기도 한다.

현재 산림동 일대에서는 청년예술가 25명이 활동하고 있다. 중구 관계자는 “청년예술가들에게는 돈 걱정 없이 꿈을 펼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고, 지역 상권과 죽어가던 골목이 살아나는 데도 도움이 되도록 사업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디자인-예술 프로젝트#을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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