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민동용]‘렌즈 포비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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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공리주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은 중앙 탑에 있는 감시자를 수감자는 볼 수 없도록 설계된 원형 감옥인 패놉티콘 개념과 설계도를 제시했다. 보이지 않는 감시자의 시선을 느끼는 수감자가 더 잘 교화된다는 것이다. 미셸 푸코는 이 개념을 확장해 ‘감시자 없이 모두가 모두를 감시하는 형태’를 근대사회로 봤다. 개인이 첨단 정보기술(IT)에 통제되다시피 하는 21세기는 ‘디지털 패놉티콘’이라고도 불린다.

▷현대인은 자신의 정보가 인터넷에 연결된 IT 기기를 통해 사이버 공간에 저장되는 것을 알지만 묵인한다. ‘자발적으로 디지털 패놉티콘에 참여한다’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그렇다고 일거수일투족을 누군가 몰래 들여다보는 것까지 방조할 수는 없다. 최근 가정용 폐쇄회로(CC)TV를 해킹해 여성 수천 명의 사생활을 엿본 일당이 붙잡혔다. CCTV뿐만이 아니다. 인터넷 카메라(IP 카메라)를 비롯해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비디오게임기부터 로봇청소기나 스마트TV 등 사물인터넷(IoT) 가전제품을 해킹해 훔쳐본 타인의 일상이 담긴 동영상이 인터넷상에 퍼져 간다.

▷아이 돌보미에게 맡긴 아이가 집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보려고 설치한 IP 카메라는 손수건으로 덮는다. 노트북 웹카메라 렌즈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스마트폰은 뒤집어 놓는다. ‘렌즈 포비아’다. 정부는 지난해 홈·가전 IoT 보안가이드를 발표하고 IoT 기기 업체가 개발 단계부터 보안성을 높이도록 했다. 그러나 저가의 중국산은 해당 사항이 아니다. 중국에서는 3만 원만 내면 IP 카메라 해킹 소프트웨어를 살 수 있다.

▷인터넷 보안 전문가들은 ‘0000’같이 설정된 비밀번호 해킹에는 10초도 안 걸린다고 말한다. IoT 가전제품 초기 비밀번호를 복잡하게 바꾸고 주기적으로 변경하며 소프트웨어를 최신 상태로 업데이트해야 하는 이유다. IP 카메라는 정말 필요한지 고민해야 한다. 구입했다면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데는 설치하지 말고 쓰지 않을 때는 전원을 꺼놓는 게 기본이다. 집 밖에서는 불법 촬영용 뚫린 구멍이 없는지 살펴봐야 하고 집 안에서는 ‘관음의 렌즈’를 경계해야 하는 위험한 시대다.
 
민동용 논설위원 mindy@donga.com
#판옵티콘#cctv#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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