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안드레이 란코프]북핵 문제 ‘냉탕과 온탕’도 괜찮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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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양대학 교수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양대학 교수
최근 미국에서 나온 대북 정책 관련 신호는 서로 엇갈리는, 모순적인 소식이 많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을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여러 번 표시했다. 더 중요한 것은 비핵화가 즉각적으로 할 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신호를 보내는 동시에 미 재무부는 대북제재를 실시할 의지를 전례 없이 보여주고 있다. 한국 4대 기업과 산림청도 미국대사관의 연락을 받고 북한과의 협력에 대해 사실상 조사받았다는 것은 미 행정부의 이러한 태도를 잘 보여준다. 이 소식들을 보면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노선의 특징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적인 비핵화가 불가능한 것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긴장과 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은 지나친 대북 압박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는 장기적으로는 북한 비핵화를 이룰 수 있다는 걸 알고, 북한에 대한 경제 압박에 희망을 걸고 있다.

미국은 북한과 회담을 하면서도 동시에 대북제재를 유지할 의지가 아주 강하다. 최근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한국까지 대북제재의 완화를 지지하고 있지만 미국은 이러한 움직임을 과거보다 더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당연히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므로 미국의 허락 없는 대북제재 완화는 불가능하다. 미국의 희망은 거의 모든 북한의 무역을 사실상 불법으로 만드는 대북제재가 조만간 북한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북한의 경제난을 초래하는 것이다. 북한이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핵 관련 양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태에 빠지는 것이 현재 미국의 대북 전략을 결정하는 기본 희망이다.

한국 입장에서 보면 미국의 이러한 태도는 장단점이 있다. 미국의 전략은 북핵에서 진전을 가져올 수 없지만 한반도에서 매우 위험한 군사위기가 생길 가능성을 줄이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최후통첩을 던지지도 않고 2017년처럼 군사력을 사용하겠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강경파의 영향력을 가로막고 있다. 트럼프는 사실상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만 하지 않는다면 오랫동안 기다려도 된다고 했기 때문에 비핵화가 즉각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군사력까지 사용해도 된다고 주장하는 강경파에 타격을 가했다.

이것은 좋은 소식이다. 2017년식 최대 압박의 재개를 희망하는 미국 강경파는 비핵화를 이룰 가능성이 없으며 동북아시아에서 무력 충돌을 초래할 가능성까지 있다. 서울이 정말 불바다가 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강경파의 영향력 약화를 환영할 이유가 충분히 있다. 그러나 나쁜 소식도 없지 않다. 미 행정부의 희망은 근거가 없다. 북한에 대한 ‘일상적인 압박’은 비핵화를 가져오지 못할 것이다. 중국이 최근에 대북제재 집행을 많이 완화했기 때문에 북한은 치명적인 경제위기의 가능성을 회피했으며 트럼프의 임기까지 그럭저럭 견딜 수 있을 것이다. 체제 안전의 절대 보장으로 여기는 핵무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경제성장의 둔화뿐 아니라 소폭의 마이너스 성장도 쉽게 치를 수 있는 대가다.

한편으로 이러한 조건하에서는 남북한 경협의 재개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상징적이고 화려한 행사가 있겠지만 의미 있는 교류나 대북 투자, 대북 지원까지 여전히 꿈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래도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 덕분에 한반도가 다시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줄어들고 있으므로 우리는 이 전략을 환영해야 한다. 그 전략의 기반이 환상이라는 것은 현 단계에서 아직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양대학 교수
#대북 정책#북미 정상회담#대북 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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