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경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당신 정말 정신 나갔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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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0년대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농장에서 목화를 따고 있는 흑인 노예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1730년대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농장에서 목화를 따고 있는 흑인 노예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정미경 국제부 전문기자·前 워싱턴 특파원
정미경 국제부 전문기자·前 워싱턴 특파원
미국에서 살던 시절 느낀 것 중 하나는 내 말이 다른 인종이나 민족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 영어에는 과거 흑인 노예 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인종차별적(racially charged) 표현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 표현을 몇 개 소개합니다. ‘즐겨 쓰시라’는 의미가 결코 아니고, ‘실수하거나 오해 사지 말라’는 취지입니다.

△“This elections is so cotton-picking important to the state of Florida.”

‘Cotton-picking’은 목화를 따는 흑인 노예에서 유래했습니다. ‘정말로’ ‘진짜’라는 뜻입니다. “이번 선거는 플로리다주에 정말 중요하다.” 별로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은 문구인데 4일 중간선거 지원유세에서 이 말을 했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서니 퍼듀 농무장관은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플로리다주는 이번 중간선거에서 민주당 주지사 후보로 사상 처음으로 흑인이 출마했습니다. 장관은 다른 표현을 쓸 수도 있었을 텐데 마치 흑인 후보 들으라는 듯 ‘cotton-picking’이라고 했습니다. 또 얼마 전 폭스뉴스 해설가를 겸업하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의 한 선거 전략가는 방송 중에 흑인 패널에게 “Are you out of your cotton-picking mind(당신 정말 정신 나갔어요)?”라고 했다가 폭스뉴스에서 해고됐습니다.

△“I realized I was getting gypped.”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만 인종차별적 표현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의 발언입니다 ‘Gyp’은 소수 유랑민족 ‘집시(Gypsy)’에서 유래된 동사로 ‘속이다’ ‘바가지를 씌우다’라는 뜻입니다. 집시에게 ‘떠돌이’ ‘사기꾼’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따라다니는 것은 아실 겁니다. 퍼스트레이디 시절 미셸은 한 세미나에 참석해 “나는 내가 속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면서 자신의 경험담을 얘기합니다. 자녀 양육 때문에 파트타임으로 일했는데 결국 풀타임 직원의 업무량만큼 일하면서 파트타임 월급을 받았다는 겁니다. 당시 미 언론은 시끄러웠습니다. 소수인종 흑인 대통령 부인이 또 다른 소수민족 집시에 대한 인종차별적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를 썼으니까요. ‘Gypped’ 대신 ‘duped’ ‘cheated’ 등 인종차별 논란이 없는 평범한 단어를 쓰는 것이 좋았을 것입니다.
 
정미경 국제부 전문기자·前 워싱턴 특파원
#인종차별#흑인 노예#cotton pic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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