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평인]제1차 세계대전과 민족주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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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은 1914년 세르비아 청년이 오스트리아 황태자를 쏜 사건이 방아쇠 역할을 했다. 하지만 정작 싸움의 주역이 한편에서는 독일, 다른 한편에서는 러시아와 프랑스가 된 이유를 알려면 세르비아의 슬라브족 형님 격인 러시아와 오스트리아의 게르만족 형님격인 독일의 대결구도와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전쟁에서 알자스로렌 지방을 독일에 빼앗긴 프랑스의 원한을 이해해야 한다.

▷제1차 대전 종전으로부터 100년이 되는 11일 관련국 정상이 프랑스 파리에 모인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우리가 사는 시대가 제1차 대전과 제2차 대전 사이인 간전기(間戰期)와 흡사하다”는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제1차 대전 전후 처리 과정에서 독일에 과도한 배상을 요구한 것이 독일의 민족주의적 반발을 불러일으켜 제2차 대전으로 이어지는 원인이 됐다. 오늘날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에서 극우파가 득세하는 것이 제2차 대전 직전과 비슷한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20세기는 1900년부터가 아니라 1918년부터라고 말하기도 한다. 근대의 끝자락까지 남아있던 ‘카이저’니 ‘차르’니 하는 구식 군주들과 그에 부합하는 낡은 신분적 문화가 사라지고 민주주의와 대중문화의 시대, 바로 우리가 사는 현대로 들어서는 계기가 된 것이 제1차 대전 종전이다. 국제적으로도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이 태어나면서 약육강식(弱肉强食)의 ‘힘의 외교’를 넘어서려는 노력이 시작됐다.

▷강대국 민족주의가 제국주의적 야욕으로 불붙어 두 차례 세계대전이 일어났지만 그 속에서 약소국들에는 민족자결주의라는 새 희망이 주어졌다. 제1차 대전 직후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에 힘입어 폴란드 등이 독립을 획득했다. 1919년 우리나라의 3·1운동도 그 영향으로 일어났다. 불행하게도 일본은 제1차 대전의 승전국이었고 3·1운동은 독립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럼에도 민족자결주의는 거역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 돼 제2차 대전 이후 한국 등 수많은 신생국을 탄생시킨 동력이 됐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제1차 세계대전#종전#민족자결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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