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정동]새로운 시도는 그 자체로 아름답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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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가 정부·공공기관에 몰리고 기업도 地代비즈니스에 쏠리는
도전적 시도 없는 경제는 죽은 경제
창조적 파괴의 엔진 어디 없는가… 새로운 시도, 일단 許하고 격려하라

이정동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이정동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공기업과 각종 정부 관련 기관, 국공립대학 등 공공기관의 직원 채용에 학력과 경력 어느 것 하나 빼놓을 것 없이 우수한 인재들이 줄을 선 지 좀 됐다. 안타깝게도 그 날고 기던 인재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얼마 안 있어 지극히 평범한 직장인으로 변한다. 우수한 인재들이 어디로 가는가를 보면 그 사회의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우수한 인재들이 어디로 몰리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봐도 그 사회의 미래를 볼 수 있다. 다른 나라 이야기라서 조심스럽지만, 태국의 최대 면세점 소유주였던 한 부자는 그렇게 번 돈으로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구단주가 됐다. 태국 산업의 도전적 기술혁신을 위해 쓰일 수도 있었던 그 귀하디귀한 돈이 프리미어리그 선수들의 연봉과 열혈 팬들의 함성소리로 바뀌었다. 안타깝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이야기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제도로 보호받는 면세점 비즈니스에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사운을 걸고’ 나서던 비장한 모습이 겹쳐진다. 면세점처럼 제도로 보호받는 ‘지대(地代) 비즈니스’는 정의상 도전적 시행착오가 없는 게 당연하다. 우리 경제에 모인 돈이 배당과 자사주 소각으로 소진되고 있고, 그나마 투자도 제도 비즈니스를 기웃거리거나 기존 사업의 설비를 보수하는 데 겨우 쓰이고 있는 걱정스러운 현실이다.

새로운 시도가 얼마나 허용되는지를 봐도 그 경제의 미래를 읽을 수 있다. 블루투스로 무게 정보를 실시간으로 주고받는 새로운 전자식 저울을 개발한 사업가가 있었다. 최근까지 3년이 넘도록 관련 부처 간의 떠넘기기 와중에 사업을 접어야 하는 지경에 처했다는 안타까운 하소연이 최근 며칠 새 기사화됐다. 사업을 추진하는 사람의 이야기이니 속내를 더 들어봐야 알겠지만 연유야 어찌 되었건 결과적으로 한국 산업계에 새로운 시도 하나가 3년간 죽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사람과 돈이 도전적인 시도가 있는 곳으로 흐르지 않고, 새로운 시도가 허용되지 않는 경제는 죽은 호수와 같다.

장기적으로 보면 아무리 뛰어난 기업의 주가지수라 할지라도 주식시장의 평균 주가지수를 뛰어넘지 못한다. 그 비밀은 창조적 파괴의 메커니즘에 있다. 주식시장에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역동성을 가진 기업이 들어오고, 낡은 기업이 퇴출되는 신진대사가 이루어진다. 이 신진대사의 힘이 바로 국가경제를 성장시키는 내생적 엔진이다. 앞서 말한 몇 가지 정황 증거를 살펴보면 한국 경제의 심장부에 있는 창조적 파괴의 혁신엔진이 서서히 식어가고 있음에 틀림없다. 여기에 다시 불을 붙여야 한다.

무엇보다 새로운 시도를 장려하는 메시지가 간절하다. 작은 것은 아름답다는 말이 있는데, 작더라도 새로운 도전이라면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공감대가 필요하다. 그래서 도전한 끝에 성공하는 사람이 나타나고, 우수한 인재들이 그 본보기를 따라 너도나도 도전에 나서야 한다. 투자는 자연스럽게 따라간다. 이런 시끌벅적한 경제가 살아 숨 쉬는 경제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벤처 거품 때처럼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는 사건이나 기술적 실패로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하나 벌써부터 걱정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러나 시도를 하지 않아서 성장의 기회를 잃어버리는 기회비용과 시도한 후에 생길 수 있는 시행착오 비용을 같이 살펴봐야 정당한 비교가 된다. 역동적이고 자신감이 넘치는 경제에서는 전자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비용이 후자의 눈에 보이는 단기적 비용보다 훨씬 치명적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도전을 허용하고, 문제가 생기면 다시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가자는 실용적인 마인드가 있기 때문이다.

창조적 파괴의 과정에서 밀려나는 사람과 기업을 걱정하기도 한다. 새로운 시도가 자유롭게 허용되면 이런 문제도 더 생산적으로 풀릴 수 있다. 구조조정으로 퇴출되는 회사의 핵심 역량을 독창적으로 재조합해서 새로운 비즈니스로 탈바꿈시키는 경험 있는 사업가도 등장할 수 있고, 기가 막힌 평생교육 모델을 시도하는 청년 기업가도 나타날 수 있다. 신기술로 인한 기술적 부작용도 나름의 아이디어로 해결해 보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왜 없겠는가. 식어가는 창조적 파괴의 엔진을 뜨겁게 달구는 메시지가 필요하다. 새로운 시도는 그 자체로 아름답다. 일단 허(許)하고, 격려하라.
 
이정동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공기업#면세점#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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