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 뒤집으려던 박근혜 정부, 위안부합의 비난에 혼선… 재판 더 늦어져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1일 03시 00분


코멘트

[대법 징용피해 배상 확정판결]‘일제 강제징용’ 판결 6년 지연, 왜

2012년 5월 대법원 1부(당시 주심 김능환 대법관)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이 있다고 처음 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는 6년 5개월 뒤인 지난달 30일 뒤늦게 이 판결을 확정했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대법원이 그 당시 한일 외교관계 악화를 우려하는 정부의 영향을 받아 고의로 재판 심리일정을 조정하려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 터닝포인트는 ‘2015년 12월 한일 간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합의’라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배상을 받을 수 있다는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이 나온 지 3년이 지난 2015년 5월까지 대법원은 판결을 확정지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민법상 손해배상청구권은 피해자가 손해를 안 날부터 3년 이내에 행사해야 한다.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과는 별도로 일본 기업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판결을 2015년 5월 이전 확정한다면 다른 피해자들의 추가 소송이 이어질 수 있었기 때문에 대법원이 이를 피하려고 판결을 지연시켰다는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이 때문에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와 외교부가 대법원 법원행정처 관계자들과 2013년 12월과 2014년 10월 두 차례 김기춘 당시 대통령비서실장 공관에서 회의를 했다. 외교부가 대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하면, 대법원은 전원합의체에 사건을 회부해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이 없는 것으로 결론을 내는 로드맵을 논의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2015년 1월 정부기관이 대법원에 의견서 제출을 할 수 있도록 민사소송규칙을 바꿨다.

그런데 규칙 개정 이후 외교부가 의견서 제출을 미루면서 로드맵 이행에 차질이 빚어졌다. 2015년 12월 한일 간 위안부 피해자 합의 직후 당사자인 피해자 할머니들과 시민단체가 합의에 반대하자 외교부가 부담을 느낀 것이다. 그런 분위기에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피해 배상 인정에 반대하는 의견서를 대법원에 보낼 경우 매국노 소리를 들을까 봐 우려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2016년 7월경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곽병훈 전 대통령법률비서관에게 외교부의 의견서 제출을 재촉했고, 곽 전 비서관은 “대법원에서 다 오케이 했는데 왜 이렇게 늦어지냐”며 외교부를 압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A 행정관은 외교부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빨리빨리 진행하라’고 질책했다”고 전하며 의견서 제출을 촉구했다.

또 같은 해 9월 일본이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한 ‘화해·치유재단’에 10억 엔을 송금한 뒤 임 전 차장은 외교부 청사를 직접 찾아갔다. 외교부는 의견서 제출을 위한 규칙 개정 1년 10개월 만인 2016년 11월 대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한 달 뒤 박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면서 결국 로드맵 시행이 중단됐다. 검찰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14만 명 이상의 추가 소송 제기를 막았기 때문에 대법원과 청와대·외교부 간의 ‘재판 거래’가 달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황형준 constant25@donga.com·김동혁 기자
#위안부합의 비난#재판 더 늦어져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