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와서 눈물이 나와… 같이 살아서 왔으면 좋았을걸”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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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소송 4인중 유일생존 이춘식씨

이춘식 씨(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등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청구 소송 관계자들이 30일 오후 상고심 선고에 앞서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을 들고 있는 왼쪽 끝의 두 남성은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21년간 이번 소송을 도운 일본인 
우에다 게이시 씨(왼쪽)와 나카타 미쓰노부 씨. 뉴시스
이춘식 씨(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등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청구 소송 관계자들이 30일 오후 상고심 선고에 앞서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을 들고 있는 왼쪽 끝의 두 남성은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21년간 이번 소송을 도운 일본인 우에다 게이시 씨(왼쪽)와 나카타 미쓰노부 씨. 뉴시스
“재판은 너이(4명)가 넣었는디…나 혼자 와서 눈물이 나와 서러워. 안 울라 그랬는디 눈물이 나와. 같이 옆에 있었다면 같이 살아서 왔으면 좋았을 텐데….”

일제강점기 전범 기업인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원고 4명 중 유일한 생존자 이춘식 씨(98)는 30일 오후 대법원 선고를 앞두고 대법정에 들어서며 이렇게 말했다. 흐르는 눈물에 울컥울컥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거동이 불편하고 청력도 안 좋지만 대법원 선고 소식을 듣고 광주에서 서울로 한걸음에 달려왔다.

법원에 처음 소송을 제기한 2005년 이 씨는 일본에 강제로 끌려갔던 동료 3명과 함께했다. 하지만 재판 도중 여운택 신천수 씨가 먼저 숨졌고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억울함을 풀자’고 다짐했던 김규수 씨도 올해 6월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 씨는 혼자라는 사실을 이날 대법원 선고 직전 처음 알았다. 그의 건강을 해칠까 봐 주변 사람들이 김 씨의 부고를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씨는 대법정에서 휠체어에 탄 채 김명수 대법원장이 읽어 내리는 선고를 찬찬히 들었다. 김 대법원장이 “피해자들에게 각각 1억 원을 배상하라”는 원심 판결을 확정하는 순간 이 씨의 눈시울은 다시 새빨개졌다. 그는 “재판을 혼자 받아 눈물나고 기분이 안 좋소. 조금만 참고 계셨더라면 재판을 같이 들었을 텐데 서운하다”라며 흐느꼈다.

이 씨는 고등학교에 다니던 1941년 대전에서 보국대로 강제 동원돼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제철(신일본제철의 전신) 가마이시제철소에서 일했다. 오전 6시 30분부터 화로에 석탄을 넣고 깨뜨려 뒤섞거나 대형 파이프 속에 들어가 석탄 찌꺼기를 제거하는 노역을 했다.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도주하다 발각되면 구타를 당했다. 이 씨는 일본이 패전한 뒤 가까스로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 씨는 대법원 선고 직후 “지금이라도 선고했으니 괜찮다. 일본에서도 인정하지 않았던 그들의 만행과 내 어린 시절의 고역을 역시 내 나라의 법원에서 알아줬다”고 말했다.

이날 대법정을 찾은 원고 김 씨의 부인 최정호 씨(85)는 “감회가 깊다. 기왕이면 일찍 좀 서둘러 주셔서 본인이 그렇게 한이 되었던 게 마무리된 것을 봤더라면…”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강제징용 피해자 유가족 3명도 대법정에서 선고를 지켜봤다. 처음 소송을 냈던 원고 5명은 모두 세상을 떠나 유족들이 소송을 이어가고 있다. 신일본제철 소송 승소로 미쓰비시중공업 피해자 유족들도 승소할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원고 고 박창환 씨의 장남 박재훈 씨(72)는 “드디어 아버지의 한을 풀어드릴 기회가 열린 것 같다”며 기뻐했다. 원고 박 씨는 1944년 미쓰비시중공업 히로시마 조선소 주물 공장에 끌려가 노역하다 1945년 미군의 히로시마 원폭 투하 당시 턱을 심하게 다쳤다. 원고 고 이병목 씨의 차남 이규매 씨(68), 고 박남순 씨의 장남 박상복 씨(71)는 이날 선고를 본 뒤 “신일본제철 소송 결과처럼 미쓰비시 소송도 대법원이 어서 마무리를 지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주영 aimhigh@donga.com·김동혁 기자
#소송 4인중 유일생존 이춘식씨#일제 강제징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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