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돈 年5조 붓는 요양원… 운영비로 외제차 몰고 술값까지 펑펑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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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혈세 구멍’ 사설 요양원

《 “요양원을 세우면 3년 안에 빚을 갚는다.” 요양원 관계자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여기서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하나는 빠른 고령화로 노인 재활, 돌봄 서비스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또 다른 하나는 요양원이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전국의 민간 요양원은 3810개. 이 기관들의 운영비 중 80%는 매달 월급에서 빠져나가는 노인장기요양보험료로 충당한다. 이 돈이 제대로 쓰이면 상관없지만 요양원 대표가 외제차를 굴리고 술값으로 탕진했다는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요양원은 ‘제2의 사립유치원’이란 지적이 나온다. 》
 
“아무리 불러도 간호사나 요양보호사가 안 보여요.”

지방 A요양원의 환자들은 항상 답답함을 호소했다. 요양원 측은 입소 당시 ‘간호사 2명, 요양보호사 5명을 배치했다’고 설명했지만 몸이 불편해 도움이 필요할 때는 간호 인력을 찾을 수 없었다.

알고 보니 이 요양원은 간호 인력의 근무시간을 허위로 부풀렸다. 간호사를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만 일하게 해놓고, 국민건강보험공단에는 오후 6시까지 근무했다고 거짓으로 신고했다. 요양원은 환자 수에 따라 적정 인력을 갖춰야 노인장기요양보험 급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곳 간호사들은 환자들의 식사까지 만들도록 강요받아 병실 못지않게 주방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A요양원은 이런 방식으로 3년간 보험 급여 2억 원가량을 부당하게 챙겨오다 올해 7월 보건당국에 적발됐다.

한국사회가 빠르게 고령화되면서 전국에 요양시설이 급증하고 있지만 적지 않은 시설이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사설 요양원은 정부로부터 운영비의 80%를 지급받는다. 그럼에도 마땅한 감시체계를 갖추지 않아 각종 비리가 속출하고 있다.

○ 유치원 비리와 똑 닮은 요양원
최근 경기도 회계감사에서 적발된 성남시의 B요양원 대표는 자신이 타는 벤츠 승용차 리스 보증금과 월 사용료, 보험료 등 7700만 원을 요양원 운영비에서 충당했다. 더 나아가 나이트클럽 술값, 골프장 이용료, 가족들 여행비, 자녀 교육비 등 1800만 원을 운영비에서 썼다. 정부 보조금을 유흥비 등에 쓴 사설 유치원 비리의 복사판이다. 유치원과 요양병원에 이어 요양원까지 나랏돈이 줄줄 새고 있는 셈이다.

요양원은 재활과 돌봄에 초점을 둔 생활시설이다. 노인요양시설과 공동생활가정을 합친 형태로 치료가 주목적인 요양병원과는 다르다. 요양병원은 노인 질환을 앓거나 외과 수술 후 회복이 필요한 노인이 주로 치료를 목적으로 입원하는 의료기관이다. 따라서 다른 병원들처럼 환자를 돌보는 비용 일부(평균 65%)를 건강보험으로 충당한다.

반면 요양원은 요양비의 80%를 국민이 내는 노인장기요양보험료에서 충당한다. 환자 본인은 전체 비용의 20%만 내고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요양병원과 달리 장기요양보험이 적용되기 때문에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장기요양 등급을 받은 환자만 들어갈 수 있다. 또 요양원은 요양병원과 달리 의사가 상주하지 않는다.

○ 정원의 10% 넘기기 일쑤

요양원 가운데 입소한 환자들에게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사례가 적지 않다. 요양원은 보통 촉탁의가 한 달에 두 차례 정도 방문해 입소자들의 건강상태를 점검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하지 않는 곳이 있다. 올해 초 C요양원은 촉탁의가 직접 방문하지 않은 채 환자도 아닌 요양원 관계자들에게 환자 상태를 묻는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다 보건당국에 적발됐다.

80대 어머니를 경기도의 한 요양원에 모신 회사원 김모 씨는 “중증 치매와 당뇨병을 앓고 계셨는데, 어느 날 면회를 가니 낙상사고를 당해 왼쪽 다리 혈관이 막혀 있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촉탁의가 입소자 수십 명을 돌보면서 형식적 진료만 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환자 수를 늘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D요양원은 보건당국에 시설 내 20명을 수용하겠다고 등록했지만 실제 장기요양 등급을 받지 않은 환자 3명을 더 입소시켜 수천만 원의 장기요양 급여를 타냈다가 적발됐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상당수 요양원이 관행처럼 정원의 10%를 넘겨 환자를 받는다”며 “정작 비용이 드는 간호 인력은 줄여 환자가 제대로 된 관리를 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 나랏돈은 들어가지만 감시체계는 허술

환자가 입소하는 방식의 사설(법인 제외) 요양원은 지난해 말 기준 3810곳으로 2010년(2281곳)에 비해 67% 늘었다. 가정을 방문해 고령자를 돌보는 재가(在家)서비스 업체까지 합치면 전국에 약 2만 곳에 달한다. 이런 장기요양시설에 지원한 노인장기요양 급여는 지난해에만 4조9714억 원에 이른다. 한 해 사립유치원에 지원하는 누리과정 예산 2조 원의 두 배가 넘는다.

하지만 관리감독은 허술하다. 사회복지시설에 속하는 요양원은 2012년부터 의무적으로 회계정보를 정부 관리시스템에 올려야 한다. 하지만 각 지방자치단체가 모든 사회복지시설을 검사하기가 어렵다 보니 형식적 수준에 그치고 있다. 더욱이 재가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은 올해 5월에서야 시스템 도입이 의무화돼 그동안 사실상 감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사회복지사 자격증만 있으면 요양원 설립이 가능한 점도 요양원 남발과 질 저하를 부추기는 원인으로 꼽힌다. 전용호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일본의 경우 요양원을 세우려면 전문 교육기관에서 2년 가까이 정규 교육을 받아야 한다”며 “실제 요양시설에서 근무한 경력 등을 추가해 설립 요건을 강화해야 제대로 된 돌봄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윤종 zozo@donga.com·김철중 기자
#나랏돈 붓는 요양원#혈세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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