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호기심 천국-성인용품… ‘이마트 반대전략’이 젊은층 홀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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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에로쑈핑의 역발상

6월 서울 강남구 스타필드 코엑스몰에서 문을 연 삐에로쑈핑 1호점은 4만 개의 상품이 어지럽게 나열돼 있지만 연관 상품들을 한 
코너에 몰아두는 그 나름의 진열 원칙을 지키고 있다.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던 상품들을 발굴해 판매하면서 20, 30대 젊은 
고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마트 제공
6월 서울 강남구 스타필드 코엑스몰에서 문을 연 삐에로쑈핑 1호점은 4만 개의 상품이 어지럽게 나열돼 있지만 연관 상품들을 한 코너에 몰아두는 그 나름의 진열 원칙을 지키고 있다.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던 상품들을 발굴해 판매하면서 20, 30대 젊은 고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마트 제공
“아우, 왜 이렇게 복잡해.”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에서였을까. 매장에 들어서자 이내 답답함이 몰려왔다. 진열대 사이 통로가 좁아 두 사람이 마주치면 한 명에게 양보의 미덕이 강요됐다. 주변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는 듯 박스째 진열한 상품들은 보기만 해도 어지러웠다.

22일 찾은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스타필드 코엑스몰 ‘삐에로쑈핑’ 1호점의 첫인상이었다. 물론 이곳에서 만난 고객들의 생각이 기자와 동일했던 건 아니다.

허희재 씨(25·여)는 “한국엔 없던 형태의 매장이라 신선하다”고 했다. 남자 친구인 손형석 씨(29)와 동행한 그는 물건을 사려는 목적보다는 데이트 코스로 이곳을 선택했단다. 허 씨는 “삐에로쑈핑이 벤치마킹했다는 일본 돈키호테에도 가 본 적 있다. 이곳도 독특한 상품이 많아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고 했다.

이동기 씨(36) 부부를 만난 곳은 주류 매대 앞이었다. 이 씨는 “다른 코너들은 그냥 복잡하기만 하고 가격이 저렴하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며 “그냥 둘러보고 나가려 했는데 못 보던 브랜드의 맥주들이 있어 고르고 있다”고 했다.

삐에로쑈핑은 신세계 이마트가 6월 ‘낫(Not) 이마트’를 기치로 론칭한 새로운 형태의 오프라인 유통채널이다. 25년간 쌓아온 이마트의 상품관리 노하우를 바탕으로 했지만 콘셉트는 정반대다. 이마트가 ‘정돈’을 통해 고객 가치를 극대화한다면 삐에로쑈핑은 ‘혼돈’을 전면에 내세운다. 일단 초기 반응은 긍정적이다. 코엑스몰점의 하루 평균 방문고객은 평일 8000명, 주말 1만 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 20, 30대 타깃 전략
삐에로쑈핑 매장 직원들은 수시로 진열대 상황을 체크하면서 재고가 빈 상품들을 발견하면 본인 휴대전화를 통해 주문을 넣는다. 이마트 제공
삐에로쑈핑 매장 직원들은 수시로 진열대 상황을 체크하면서 재고가 빈 상품들을 발견하면 본인 휴대전화를 통해 주문을 넣는다. 이마트 제공
이마트의 가장 큰 고민은 주력 고객층의 고령화다. 전국 이마트를 찾는 고객들의 평균 나이(멤버십 카드 사용 데이터로 도출)는 지난해 기준 46세. 4년 전인 2013년 44세에서 두 살이나 높아졌다. 1993년 서울 도봉구 창동 1호점을 낸 후 20, 30대 고객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던 때와는 분명 다르다. 문제는 이마트 충성 고객들이 나이를 먹어가는 동안 다음 세대들의 유입은 눈에 띄게 적어졌다는 점이다. 보다 새롭고, 독특하고, 다양한 상품을 찾는 신세대들에게 ‘4인 가족’ 기준 상품으로 승부하는 이마트가 예전 같은 경쟁력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기존 대형마트의 마케팅 포인트를 주력 고객층이 아닌 20, 30대로 섣불리 변경하기는 어려운 법. 그 대신 아예 색다른 채널을 만드는 것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삐에로쑈핑을 대표하는 전략은 ‘3·3·4 정책’이다. 통상적으로 반복 구매가 일어나는 기본 상품 30%,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뛰어난 저렴한 상품 30%, 평소 잘 접하지 못하는 완전히 새로운 상품 40%로 비율을 가져간다는 의미다.

주력은 새로운 상품이다. 기존 유통채널에서는 감히 시도할 생각조차 못했던 성인용품 매장도 그 일환이다. 송영진 코엑스몰점 점장은 “처음 문을 열었을 때는 고객들이 성인숍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라 긴장했었다. 그런데 고객들의 반응은 예상보다 훨씬 좋다”고 전했다.

상품기획자(MD)들의 핵심 업무도 재기발랄한 신상품 발굴에 집중돼 있다. ‘요지경 만물상’이라는 슬로건도 이런 배경에서 만들어졌다. 이마트 상품본부의 유진철 삐에로 BM 수석부장은 “삐에로쑈핑은 고객들이 그냥 놀러 와서 체험하게끔 하는 게 기본 콘셉트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손에 상품 몇 개를 들고 나가도록 하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3분기(7∼9월) 기준 코엑스몰점 고객들의 연령대별 비율은 20, 30대가 49.5%로 거의 절반이다. 9월에 문을 연 서울 동대문구 두타몰점은 같은 연령대 비율이 58.3%나 된다. 20, 30대를 위한 ‘대안’을 만들겠다는 전략은 어느 정도 적중하고 있다.

○ 무질서 속에도 원칙은 있다

삐에로쑈핑이 취급하는 상품의 88%는 중소기업 제품이다. 대형마트나 편의점 등에 쉽게 입점할 수 없었던 중소기업들에는 삐에로쑈핑은 일종의 테스트마켓이 된다. 상품 교체율도 매우 빠르다. 고객들로 하여금 전에 봤던 상품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상품이 나왔는지 궁금해서 매장을 다시 찾도록 하는 것이다.

코엑스몰점은 2508m²(약 760평) 넓이 매장에 4만여 개의 상품을 진열하고 있다. 평당 상품 개수가 53개로 밀도가 이마트의 2배가 넘는다. 두타몰점은 1403m²(약 425평)에 3만2000여 개 상품이 있어 평당 상품 수가 75개나 된다.

재고를 쌓아두는 창고도 없다. 기본 진열대 양 측면에 놓인 ‘사이드 엔드캡’이나 중간중간 배치한 ‘원통 집기’를 재고 보관 용도로 활용한다. 직원들이 돌아다니다가 기본 진열대에 상품이 빈 것을 발견하면 인근의 재고로 곧바로 채워 넣는 식이다. 재고마저 떨어지면 직원들이 관리용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직접 주문을 한다.

송 점장은 “이마트에서 일하던 직원들을 2개월간 집중 교육한 뒤 삐에로쑈핑으로 데려왔다. 처음에는 직원들이 낯설어했지만 현장 관리 방식이 매우 효율적이라는 게 빠르게 증명되고 있다”고 했다.

상품군을 나누는 카테고리는 고객 지향적이다. 대형마트는 가전제품, 생활용품, 식료품처럼 담당자별로 섹터를 정한다. 삐에로쑈핑은 소형 가전기기인 헤어드라이어와 전동 칫솔을 일반 칫솔이나 샴푸 등 욕실용품과 나란히 배치한다. 건강식품은 식품 코너가 아니라 건강보조기구 옆에 둔다. 완구의 경우 어린이용은 과자류와 함께, 성인 남성들이 주로 찾는 ‘키덜트’ 제품들은 주류 매장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

이런 전략은 높은 연관 구매율이라는 결실을 낳았다. 과자와 어린이용 완구의 연관 구매율은 이마트가 올해 상반기(1∼6월) 5%였는데, 삐에로쑈핑 코엑스몰점은 3분기(7∼9월) 13%나 된다. 건강식품과 건강보조기구 연관 구매율도 삐에로쑈핑(10%)이 이마트(6%)보다 훨씬 높다.

이마트는 올해 경기 의왕시, 서울 논현동과 명동 등에 삐에로쑈핑 매장을 추가로 낸다. 입점 협의 중인 1곳을 포함하면 연내 최대 6곳까지 늘어날 수 있다. 유 수석부장은 “삐에로쑈핑은 온라인 쇼핑에 빼앗겼던 젊은 소비자들을 ‘체험’이란 핵심 경쟁력을 통해 다시 오프라인으로 끌고 오려는 도전”이라고 말했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삐에로쑈핑의 역발상#이마트 반대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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