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삶이 하나임을 몸소 보이신 큰 스승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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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김윤식 교수님을 떠나보내며

신수정 명지대 문창과 교수·문학평론가
신수정 명지대 문창과 교수·문학평론가
선생님의 학부 4학년 비평사 수업은 월요일 오전 9시 시작해 낮 12시에 끝났다. 지각은 용납되지 않았다. 교문 앞에서부터 강의실까지 미친 듯 달려왔으나 미처 시간을 맞추지 못한 일군의 지각생들이 차마 강의실 문을 밀고 들어오지 못한 채 밖에서 서성이며 내뿜는 콧김과 더불어 수업은 시작됐다.

회색과 검정 계열 넥타이에 잔 체크, 혹은 가는 세로줄이 들어간 모직 재킷을 곁들여 입으신 선생님은 칠판의 한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빽빽하게 판서를 하며 강단 이쪽에서 저쪽으로 왔다 갔다 하셨다. 때로 선생님은 오래된 신문이나 잡지의 글자를 들여다보기 위해 돋보기를 썼다가 벗고 다시 안경을 쓰기도 하셨다. 그런데 그 모습마저 그렇게 멋스럽게 보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때 우리는 모두 선생님의 강의에 홀려 있었던 것 같다. 무엇을 배웠는지는 지금 잘 기억나지도 않는다. 다만 미동도 하지 않고 선생님을 주시하던 동급생들의 머리통과 간혹 삐걱대곤 하던 나무 책상의 파열음, 그리고 그 소리에 잠시 중단되곤 하던 선생님 음성, 그 순간 공기를 가르며 내려앉던 분필가루의 흩날림, 누군가의 기침소리, 침묵…. 이런 것들만 지금도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른다.

강의실 바깥으로 나오면 사복경찰들이 점심을 받아먹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가 지나가던 여학생들에게 서슴지 않고 야비한 눈길을 던지던 시절, 선생님의 강의는 우리로 하여금 그 야만의 시간을 견딜 수 있게 만드는 유일한 보호구였다. 때로 최루탄에 맞서 돌을 던지기도 하고 옥상에 올라 유인물을 뿌리기도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깊은 절망과 외로움에 속수무책이었던 우리는 선생님 강의를 통해 잠시나마 바깥 소음을 잊고 성스러운 시간 속으로 진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우리 세대라면 선생님에 관한 전설 하나를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의 비뚜름한 입매가 책상에서 공부를 하다 그대로 얼굴을 대고 잠들어 버릇하던 습벽에서 생긴 결과라는 이야기였다. 모든 전설이 그러하듯 이 이야기는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의 나태를 깨우는 죽비 소리로 작용해 온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선생님으로부터 바깥으로만 향하던 비판의 칼날을 자신에게 되돌리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스스로에 대한 엄정한 윤리를 확인할 수 있었으며, 우리를 현혹하는 가짜 교주들로부터 벗어나 사실들이 지니고 있는 비판적 힘을 믿게 됐다. 공부, 문학, 삶이 다른 여럿이 아니라 하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됐으며, 문학을 한다는 것이 결국 자신의 전부를 내주는 일임을 비로소 자각하게 됐다.

우리 세대는 모두 선생님이 열어주신 문으로부터 새어나온 빛에 눈먼 자들과 다름없다. 그 빛이 우리를, 나를 여기로 인도했다. 우리들의 선생님, 나의 선생님을 보낸다. 선생님, 더 이상 아파하지 마세요, 부디 편안하게 잠드셔요.
 
신수정 명지대 문창과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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