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거대한 사회 흐름 앞에서 개인은 자유로울 수 있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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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일(전 2권)/리처드 포드 지음·박영원 옮김/452쪽·1만5500원, 372쪽·1만4500원·문학동네
‘박경리문학상’ 수상한 리처드 포드… 현대인의 삶 현실성 있게 그려
가족 붕괴 후 방황하는 주인공, 사회에 정착하기 위해 고군분투

소설 ‘독립기념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결혼, 가족, 공동체로 대표되는 정신적 기반과 집, 돈, 직업 같은 물리적 기반이 무너진 자리에서 방황한다. 저자는 설 자리를 잃은 여러 인간들의 모습을 다양한 각도로 그려낸다. 게티이미지뱅크
소설 ‘독립기념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결혼, 가족, 공동체로 대표되는 정신적 기반과 집, 돈, 직업 같은 물리적 기반이 무너진 자리에서 방황한다. 저자는 설 자리를 잃은 여러 인간들의 모습을 다양한 각도로 그려낸다. 게티이미지뱅크
망망대해에 떠 있는 작은 돛단배의 주인은 아무런 힘이 없다. 크고 작은 파도가 밀려오거나 예기치 못한 비바람을 만나면 계획했던 항로보다 치우쳐 우회할 뿐이다. ‘이 정도면 순풍이 불 만도 한데?’라고 예측하다가도 그게 아니라면 또 ‘어쩔 수 없다’고 말할 뿐이다. 작은 배에 탄 더 작은 몸집의 선원은 그저 돛을 갈아 달고 노를 젓는 것이다. 지금 내 판단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나아가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이런 상황처럼 이 소설은 사회·정치·경제의 큰 흐름에 영향을 받으면서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개인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미국 대표 작가로 꼽히는 저자가 현대사회 속 개인들의 삶을 매우 자세하고 세밀하게 펼쳐 놓았다. 일주일도 채 안 되는 며칠 동안 일어나는 사건들이지만 작가는 현실감 있는 대화와 배경 묘사를 활용해 긴 호흡으로 이끌어간다.

저자의 전작 소설 ‘스포츠라이터’(1986년)에도 등장했던 주인공 프랭크 베스컴은 이번 편에서는 스포츠 기자직을 그만두고 부동산 중개인이 됐다. 미국 뉴저지주의 한 마을에서 홀로 지내는 그는 독립기념일 주간을 맞아 전 부인과 함께 사는 아들 폴과 모처럼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그러나 여행은 그의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다. 폴이 얼마 전 슈퍼마켓에서 콘돔을 훔치다 걸려 경비원과 몸싸움을 벌인 혐의로 재판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만난 폴은 오랫동안 씻지 않은 것처럼 냄새가 나고 더러운 티셔츠를 입고 있다. 형의 죽음, 부모의 이혼 등으로 정서불안을 겪는 아들에게 아버지의 역할을 하려 하지만 실없는 농담으로 일관하는 폴로 인해 번번이 어긋난다.

‘스포츠라이터’가 가족의 붕괴와 해체로 인한 고독과 방황을 그렸다면, 이 소설에서는 과거로부터 벗어나 현실과 화해하려 애쓰는 인간 군상을 볼 수 있다. 프랭크는 아들을 만나러 가기 전 고객인 조와 필리스 부부를 만나 매물로 나온 집 여러 채를 보여준다. 늦둥이 딸을 둔 이 노부부는 마음에 드는 집을 살 수 있는 충분한 돈이 없다. 이렇게 되자 그들은 ‘여태껏 저질러 온 커다란 실수들을 하나씩 곱씹’으며 좌절한다.

“조가 궁지에 빠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찾으려 드는 그 승인을 찾고 있음을 나는 알아챈다. 자신을 넘어서는 어떤 존재로부터 동의를 얻고 싶어 하는 것이다. 조의 경우엔 첫눈에 보자마자 마음에 들고 또 자신이 구매할 여력도 있는 집이야말로 완벽한 승인이 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현실과 화해하는 방법은 어쩌면 가장 안정적이라 여겨지는 토지와 집에 의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프랭크가 소비되고 사라지는 스포츠 기사 쓰기를 그만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프랭크는 부동산으로 지역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려 한다. 하지만 세입자인 매클라우드 가족은 그를 경계하고 월세도 제때 내지 않는 등 집주인 노릇도 녹록지가 않다.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확실한 ‘보장’이나 ‘보증’은 존재하지 않는 현대사회에서 저자가 전하는 메시지는 ‘완전한 정착은 없다’는 것이다.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듯 고도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이들의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프랭크와 주변 인물들이 되어 이들의 대화를 곱씹고 그 심정에 다가가 있을 것이다.

조윤경 기자 yunique@donga.com
#독립기념일#리처드 포드#박경리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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