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가이드로” 엄마들의 새 출발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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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구 ‘도슨트 양성 강좌’ 인기
수강 마친 주부 등 60명중 16명, 미술관 돌며 초중고생에 그림 해설
“다시 일하게 돼 너무 즐거워”, 구청 “내년엔 예산 더 늘릴것”

16일 서울 용산구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엄마 도슨트’ 정관옥 씨가 원촌중학교 2학년 학생들에게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16일 서울 용산구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엄마 도슨트’ 정관옥 씨가 원촌중학교 2학년 학생들에게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16일 서울 용산구 삼성미술관 리움. 붉게 채색된 소년의 얼굴로 꽉 찬 그림 액자 앞에 교복 차림의 중학생들이 옹기종기 서 있다.

“이 소년을 보세요. 어때 보여요?”

“눈에 눈물이 맺혀 있어요. 그런데 표정은 무뚝뚝해요.”

도슨트 정관옥 씨(55·여)의 설명이 이어졌다.

“중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장샤오강의 작품 ‘소년’이에요. 작가가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겪은 사람들의 표정 이미지를 나타낸 거죠.”

이날 정 씨와 김은희 씨(48)는 원촌중학교 2학년 미술 동아리 학생 10명과 9번째 미술관 관람을 했다. 이른바 ‘경단녀(경력단절여성)’였던 이들은 지난해 9월 서초구가 평생학습관을 통해 개설한 ‘도슨트 양성 강좌’를 듣고 난 뒤 새로운 커리어를 꿈꾸고 있다.

도슨트 양성 과정을 수료한 구민 60여 명 중 정 씨와 이 씨 등을 포함한 16명은 이후에도 동아리를 만들어 일주일에 한 번씩 2시간을 할애해 직접 강사를 초빙하거나 서로 자료를 조사하고 공부하며 도슨트의 꿈을 키웠다.

도슨트가 이들에게 ‘일자리’가 된 것은 서초구가 서초교육청 등과 협력해 혁신교육사업의 하나로 ‘마을로 떠나는 예술여행’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면서부터다. 정 씨 등은 올 4월부터 구내 14개 초중고교를 대상으로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등 여러 미술관을 다니며 그림 해설과 가이드를 해주고 있다. 학교별로 자유학기제 프로그램이나 동아리 활동 프로그램으로 운영되고 있다.

김 씨는 “엄마가 되느라 경력이 단절됐었는데 우리 아이 또래들을 가르치니 기분이 남다르고 마음도 편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서 8년간 디스플레이 제품 디자이너로 일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게 되면서 33세에 직장을 그만뒀다. 친정어머니가 몸이 편찮아 아이를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았다.

“아이들을 어느 정도 키워놓고 나서는 다시 일을 하고 싶었지만 제 나이에 어디 취직이 쉽나요.”

도슨트 양성 과정을 듣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친하게 지내던 아이 친구의 엄마가 “구청에서 이런 강좌가 열린다는데 같이 가보자”고 해서 따라나섰다가 미술에 흠뻑 빠졌다.

학생들을 상대로 도슨트 활동을 하는 것이 과거 직장만큼 안정적인 수입원은 못 되지만 김 씨는 직업을 새로 얻었다는 것 자체가 즐겁다. 김 씨는 또 “제가 직접 책을 읽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이니 고1 아들도 잔소리 없이 공부를 하고 엄마가 일하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다”며 뿌듯해했다.

이날 미술 해설을 들은 최진아 양(14) 역시 만족스러워했다. 최 양은 “원래 미술에 관심이 많았는데 학원을 다니느라 미술관을 자주 찾지는 못했다. 학교에서 단체로 오니까 좋다”며 “그냥 감상할 때도 좋지만 배경 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더 잘되고, 도슨트 선생님이 엄마 같아 친근하다”고 말했다.

서초구는 도슨트 활동이 경단녀들에게 보다 안정적인 일자리가 될 수 있도록 내년에는 올해보다 예산을 늘리고 사업을 확대할 예정이다. 구 관계자는 “올해 미처 프로그램을 신청하지 못한 학교들이 내년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보일 만큼 반응이 좋다”며 “도슨트 사업은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이 다시 직업을 갖는 효과 외에도 서초구의 학생들이 구민으로부터 배우며 함께 마을에서 성장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미술관 가이드#도슨트 양성 강좌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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