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슈끄지 외교전’… 실익 챙기는 터키, 어정쩡한 美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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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정보 흘리며 궁지 몰면서도 물밑협상 통해 경제 실익 챙겨
美, 이란제재-무기판매 협력 절실… 사우디 출구전략 적극 도울수도
유럽 “진실 밝혀야” 진상규명 촉구
아랍은 사우디에 지지-신뢰 보내

‘카슈끄지 최후의 날’… 터키, CCTV 추가 공개 사우디아라비아의 반정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59)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폐쇄회로(CC)TV 화면이 터키 국영방송 TRT를 통해 21일 추가로 공개됐다. 
카슈끄지(빨간 원 안)는 2일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영사관 인근에 오후 1시 14분 23초경 모습을 드러냈다(①). 검정 
재킷을 걸친 그는 이내 사우디 영사관으로 들어갔고(②·③) 결국 살아 나오지 못했다. 사우디 정부는 21일 카슈끄지가 피살됐다는 
사실을 인정했으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배후설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 주요국, 그리고 사건 발생지인
 터키 정부는 사우디 정부의 발표를 불신하며 철저한 진상조사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스탄불=AP 뉴시스
‘카슈끄지 최후의 날’… 터키, CCTV 추가 공개 사우디아라비아의 반정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59)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폐쇄회로(CC)TV 화면이 터키 국영방송 TRT를 통해 21일 추가로 공개됐다. 카슈끄지(빨간 원 안)는 2일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영사관 인근에 오후 1시 14분 23초경 모습을 드러냈다(①). 검정 재킷을 걸친 그는 이내 사우디 영사관으로 들어갔고(②·③) 결국 살아 나오지 못했다. 사우디 정부는 21일 카슈끄지가 피살됐다는 사실을 인정했으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배후설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 주요국, 그리고 사건 발생지인 터키 정부는 사우디 정부의 발표를 불신하며 철저한 진상조사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스탄불=AP 뉴시스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피살 사건’의 1차 조사 결과에 대한 각국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신뢰성이 부족한 조사’란 반응이 있는가 하면 ‘진실을 파헤치려는 진심이 담긴 발표’라는 언급도 있다. 이번 사건의 배후설을 부인하던 사우디 왕실은 카슈끄지가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영사관 안에서 피살된 사실까지는 인정했다. 하지만 말다툼에 이은 우발적 주먹다짐 끝에 일어난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시신의 행방도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은 한 언론인의 죽음에 대한 진실 공방을 넘어 사우디와 얽히고설킨 각국의 이해관계까지 보여주고 있다.

실익을 챙긴 나라는 터키다. 수년간 사우디와 미묘한 경쟁관계에 있던 터키는 국제사회에서 사우디를 궁지로 몰아넣고 개혁 이미지로 포장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의 이미지를 추락시킨 것만으로도 충분히 실익을 챙긴 셈이다. 양국은 그동안 카타르 고립, 시리아 내전 등 굵직한 이슈마다 견해차를 보여 왔다.

중동 언론들은 터키 정부가 이번 사건 관련 정보를 언론에 흘리면서 사우디를 압박하고 물밑에선 사우디 왕실 및 미국과 협상을 벌이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카슈끄지 고문 상황이 담긴 녹취록, 살인 용의자 신상 정보와 입국 장면이 나오는 폐쇄회로(CC)TV 영상은 터키 내 친정부 언론들이 보도했다. 녹취록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사우디를 방문해 무함마드 왕세자를 만난 직후 공개됐다. 터키 정부가 이번 사건의 파장을 최소화하려는 사우디와 미국을 동시에 압박하는 카드로 녹취록을 활용했다고 볼 수 있다. 사우디 부호들은 터키에 많은 부동산을 갖고 있다. 외화가 부족한 터키에 사우디는 주요 투자국이다. 이 때문에 터키가 이번 사건으로 사우디와 완전한 결별을 택하진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애매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그는 19일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사우디 왕실의) 속임수와 거짓이 있었다”고 비난하면서도 무함마드 왕세자 배후설에 대해선 “누구도 내게 그(무함마드 왕세자)에게 책임이 있다, 없다고 말하지 않았다”며 즉답을 피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외교 정책의 중심은 사우디다. 11월 이란의 석유 수출을 제한하는 대이란 2차 경제 제재를 압둔 상황에서 세계 최대 석유 수출국 사우디의 도움이 절실하다. 사우디의 도움 없이 세계 석유시장의 균형을 잡기는 불가능하다. 약 1150억 달러(약 130조 원)에 달하는 무기 판매 계약과 사우디가 보유한 약 1170억 달러(약 131조8000억 원·2016년 기준) 규모의 미국 채권도 무시할 수 없다. CNN 등은 “사우디 왕실이 적당한 변명과 희생양을 찾으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랍에미리트(UAE), 이집트, 오만 등 아랍권 핵심국들은 1차 조사 결과에 대해 “진실을 파헤치려는 훌륭한 열정과 노력을 보였다”며 사우디에 지지와 신뢰를 보내고 있다. 반면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은 “일관성과 신뢰가 부족하다”며 사우디를 압박하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1일 “사건의 진상이 밝혀질 때까지 사우디에 무기를 수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CNN은 22일 카슈끄지가 사우디 영사관에 들어간 지 약 1시간 38분 뒤인 2일 오후 2시 52분경 카슈끄지가 입었던 검정 재킷과 셔츠를 입고 안경을 쓴 남성이 영사관 뒷문으로 빠져나오는 모습이 CCTV에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카슈끄지와 연령대, 키가 비슷한 이 남성은 이날 오전 파란색 체크셔츠를 입고 영사관에 들어갔었다.

카이로=서동일 특파원 dong@donga.com
#카슈끄지#터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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