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민원 때문에 개업 못하는 정신과 의사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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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원실 갖춰 건물 입주자들 반대”
부산 북구, 의료기관 개설 거부… 1년 넘게 대법원까지 소송 진행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A 씨(58)는 1년 넘게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는 지난해 5월 부산 북구의 한 건물에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을 개설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직 문을 열지 못하고 관할 구청과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다. A 씨는 “20년 넘게 여러 병원에서 봉직 의사로 근무하다 정신질환자를 보다 더 잘 치료하기 위한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했다. 의사로서 마지막 삶을 뜻깊게 보내고 싶어 개업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이런 포부는 ‘민원’이라는 암초에 부딪혔다. 입주하려던 10층 건물의 학원장 등 일부 상인이 “학생, 고객 등 이용자들이 불안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면서부터다. 이들은 거리에 입주 반대 플래카드를 붙이고 서명운동까지 벌였다.

부산 북구는 A 씨가 제출한 의료기관 개설 신고를 수리하지 않았다. 의료법에 따르면 의원(30병상 미만)을 개설하려면 근무 의료인 수 등 법적 요건을 갖춰 관할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신고만 하면 된다. 병원, 종합병원 등 규모가 큰 의료기관은 허가 대상이다. 그럼에도 구는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의한 소유자, 점유자, 이용자의 안전과 공동의 이익에 반하고 건축물의 안전 및 공공복리 증진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의원 개설을 막고 있다.

A 씨는 즉각 구를 상대로 ‘의료기관 개설신고 불수리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이 열린 건 지난해 10월. 부산지방법원 제2행정부는 “행정청(구청)은 형식상 요건에 흠결이 없을 경우 별다른 심사나 결정 없이 그 신고를 당연히 수리해야 한다”며 A 씨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자 구는 항소했고 부산고등법원 역시 올 4월 같은 이유를 들어 항소를 기각했다.

이 재판은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A 씨는 “1심 판결 후 구청이 나서서 민원인을 설득해 줄 것으로 믿었다. 그런데 재판을 3심까지 끌고 간다는 건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구청이 법보다 민원을 우선시하는 게 아니라면 스스로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을 위험 요소로 인식하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이에 대해 구 관계자는 “A 씨의 의원이 단순히 환자를 상담만 하는 게 아니라 입원실을 갖추는 형태라 이를 불안해하는 주민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해명했다.

A 씨는 얼마 전부터 한 지방 병원에서 임시직으로 일하고 있다. 대법원에서 승소하면 예정대로 해당 건물에서 의원을 열 예정이다. 이미 건물주와 보증금 1억 원, 월세 350만 원에 임대계약을 해 월세·관리비 등 500여만 원을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한 채 17개월째 내고 있다. 내부 공사에 1억5000만 원을 들였다. A 씨는 “개업을 위해 사전에 필요한 모든 행정절차를 꼼꼼하게 이행했고 인테리어를 마친 후에는 보건소에서 나와 시정 사항을 알려줘 이를 보완하기까지 했다. 담당자에게 문의해 의원 개설에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 간호사 등 직원까지 채용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강성명 기자 smkang@donga.com
#부산 북구#정신건강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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