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美, 한국 은행들에 ‘北제재 준수’ 경고 보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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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재무부 對北제재담당 고위관료, 남북 평양선언 직후 6, 7곳 접촉
농협 금강산 지점 재개 등 캐물어… 수차례 “너무 앞서가지 말라” 단속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대북 금융제재를 총괄하는 재무부 핵심 관계자가 지난달 남북 정상의 평양공동선언 발표 직후 국내 은행들을 접촉해 북한 관련 사업을 문의하는 등 대북제재 이행 상황을 집중 파악한 것으로 11일 확인됐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5·24조치 해제 검토 발언 후폭풍으로 한미 간 불협화음이 노출된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대북제재망이 느슨해질 것을 우려해 문재인 정부는 물론 한국 주요 은행의 대북 사업 움직임까지 점검해온 것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동아일보와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김선동 의원이 확인한 자료에 따르면, 미 재무부는 지난달 20, 21일 KDB산업은행, IBK기업은행, NH농협은행, KB국민은행 등 국내 국책·시중은행 6, 7곳에 e메일 또는 전화를 통해 콘퍼런스콜(전화 또는 영상회의)을 요청했다. “북한 관련 문제로 회의를 열고 싶다”는 것이다.

회의에는 미 재무부에선 테러·금융정보국(TFI) 소속 부차관보급 핵심 간부와 직원들이 나섰고 각 은행에선 부행장급 간부 등 4, 5명가량이 참여했다. 미국 측은 각 은행이 진행 중인 대북 관련 사업 현황을 물어보면서 유엔과 미국의 제재 사항을 설명했다고 한다.

특히 미 재무부는 회의에서 “농협이 검토 중인 ‘금강산 지점’ 재개 추진 상황이 어떻냐”는 등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관련 이슈를 집중 문의했다. 또 “(한국 은행들이 제재가 완화되기 전에) 너무 앞서가면 안 된다”는 취지로 여러 차례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회의에 참석한 각 은행의 담당자들은 미국 측에 “진행 중인 사업은 모두 미국 독자제재나 유엔 대북제재 틀 안에서 진행 중이다. 앞으로도 준수하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한미 외교가에선 미 행정부에서도 테러 및 대북 금융제재를 전문으로 다루는 TFI가 움직인 시점에 주목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평양공동선언을 발표하고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불만을 표시한 군사합의서(19일)를 내놓은 바로 다음 날부터 은행들을 접촉했기 때문. 미국은 20일 산은과 농협, 국민은행을 접촉했고, 기은엔 21일에 연락했다. 산은과 농협은 미국 측 연락을 함께 받고 공동회의를 열었다.
 
▼ 美, 군사합의-은행 대북사업 동시다발 견제 ▼

미 재무부 TFI와 접촉한 국내 은행들은 대부분 미국에 지점을 두고 있거나 외국 은행 및 글로벌 기업과 거래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움직임을 심상치 않게 받아들이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미 재무부가 주도하는 금융제재 대상이 되면 은행이 갖고 있는 달러화가 순식간에 빠져나간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미 재무부가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이라도 적용하면 북한과 거래하는 모든 기업과 금융기관은 미국법상 제재를 받게 된다.

이번에 미 재무부가 접촉한 국내 은행들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대북 연구 및 사업 조직을 강화해왔다.

산은은 최근 통일사업부를 한반도신경제센터로 확대 개편하고 남북경협연구단을 신설했다. 기은은 북한경제연구센터를 운영하며 ‘중소기업 지원센터’ 설립을 논의 중이다. 국민은행은 KB금융경영연구소 산하에 북한연구센터를 꾸리고 최근 외부 자문위원들을 위촉했다. 개성공단에 지점을 운영했던 우리은행은 개성공단 재개 시 지점 운영방안을 검토 중이다. 농협도 2009년까지 운영했던 금강산지점 재개를 대비 중이다.

최우열 dnsp@donga.com·장관석 기자
#한국 은행들#북한 제재 준수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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