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개편, 재정안정보다 노후보장에 무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2일 03시 00분


코멘트

소득대체율 45%로 상향 유력

“무작정 소득대체율을 45%로 높이는 방향으로 밀어붙이면 안 됩니다. ‘노후보장 강화’가 중요해도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게 구체적 재정추계와 목표, 재정안정화 방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국민연금 제도발전위원회 내에서 일어난 논쟁이다. 위원 14명 중 대다수가 소득대체율을 현행 40%에서 45%로 상향하는 ‘노후보장안’(①안)에 찬성했다. 여기에 보건복지부도 ①안을 토대로 ‘정부안’을 만들어가자 A 위원이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또 다른 위원도 “소득대체율을 현행(40%)대로 유지하면서 보험료를 올려야 재정이 안정된다”며 “①안은 미래세대에 무책임한 방안”이라고 비판했다. 결국 A 위원은 지난달 말 제도발전위를 사퇴했다.


○ 소득대체율 45% 상향 유력

제도발전위의 내부 갈등은 정부가 소득대체율을 45%로 상향하는 ①안으로 의견이 모아지면서 촉발됐다. 제도발전위 내에선 애초 ①안과 소득대체율을 40%로 유지하면서 보험료율을 크게 올리는 ‘재정균형안’(②안)이 맞서면서 올해 8월 두 안을 모두 제시했다.

현재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45%지만 매년 0.5%포인트씩 떨어져 2028년부터 40%를 유지하게 돼 있다. 소득대체율이 40%면 월평균 소득이 100만 원일 경우 65세 이후 매달 연금으로 40만 원을 받게 된다. 하지만 소득대체율이 45%로 유지되면 그만큼 국민연금 가입자에게 더 많은 이득이 돌아간다.

문제는 더 받는 만큼 얼마나 ‘더 내도록’ 할 것이냐다. ①안에선 소득대체율을 45%로 올리는 대신에 현재 9%인 보험료율을 내년 11%로, 2034년 12.3%로 각각 올리도록 했다. 보험료율을 내년에 즉시 2%포인트 올린다면 국민들의 반발이 클 수밖에 없다. 이에 정부안은 소득대체율 45%라는 ‘당근’을 제시하는 한편 보험료율 인상률을 바로 올리는 ‘즉시 인상안’과 인상 속도를 조절하는 ‘단계적 인상안’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현재 468만 원인 보험료 부과 소득상한선을 더 올리는 방안이 포함될 예정이다.

이에 앞서 복지부는 9월부터 최근까지 국민 여론을 수렴하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8월 발표된 4차 재정추계 결과 국민연금 고갈 시기가 2057년으로 3차 추계(2013년) 때보다 3년 앞당겨지면서 보험료율 인상, 수급연령 상향 조정 등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제도발전위의 권고에 따라 정부안을 국회에 제출하기 위해서다.

○ 중장년층 유리하지만 청년층에겐 큰 부담

정부안은 소득대체율을 높여 ‘노후보장성 강화’란 명분을 쌓고, 이를 토대로 보험료 인상에 대한 반발을 줄이려는 의도로 보인다. 다만 이 같은 정부안은 부담을 미래 청년세대에게 전가시킬 수 있다. 일각에서는 정권 차원에서 2020년 4월 총선, 2022년 대선을 감안해 당장의 선거 결과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치는 중장년층과 고령층에게 유리한 개편 방향을 채택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소득대체율을 45%로 올리는 ①안의 경우 보험료율을 2034년까지 단계적으로 12.3%로 올린 이후 재정계산을 할 때(5년)마다 조정하면 기금 고갈 시점인 2088년 이전까지는 적립금을 남길 수 있는 것으로 발표됐다.

하지만 동아일보 취재팀이 분석해보니 실제 계산 결과는 달랐다. 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이 국회 예산정책처로부터 제출받은 추계 결과를 보면 소득대체율을 45%로 올릴 경우 연금 재정에 추가로 누적되는 부담은 2030년까지는 2조 원 이하다. 하지만 2040년 22조 원, 2050년 101조 원, 2060년 267조 원 등으로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따라서 보험료율을 내년에 바로 13%로 4%포인트를 올려도 적립금 고갈 시기가 2069년으로 제도발전위 목표(2088년)보다 19년 앞당겨진다. 보험료율을 15%로 올려도 2075년까지 버티는 게 고작이다. ①안대로 보험료 인상 시기를 미루면 20년 후 보험료율이 급격히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미래 세대일수록 부담이 크다는 의미다.

사퇴한 제도발전위 A 위원도 ①안 자체가 ‘2088년까지 적립배율 1배’라는 국민연금 개편의 기본 원칙을 지키지 않은 채 발표됐다는 점을 비판했다. 2088년 1월에 국민연금이 보유한 기금이 한 해 연금을 모두 지급할 수준(적립배율 1배)이 돼야 한다는 재정 목표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김상균 제도발전위원장(서울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은 “①안은 20년 후의 재정 계획이 ‘백지’에 가깝다는 단점이 있다”며 “생산가능 인구가 더 줄어들기 전에 보험료율을 조기에 올리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우려를 염두에 둔 듯 10일 국회 보건복지위 국정감사에서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어떤 형태로든 국민연금 국가 지급을 법제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국민연금 기금 고갈 시 정부가 연금 지급을 약속하는 ‘국가 지급보장 명문화’ 추진 계획을 공식화한 셈이다.

김윤종 zozo@donga.com·조건희 기자
 
:: 소득대체율 ::

가입자의 은퇴 전 평균 소득 대비 노후 국민연금 수령액이 차지하는 비중을 뜻한다. 60세까지 월평균 소득이 100만 원이고, 65세 이후 국민연금으로 45만 원을 받으면 소득대체율은 45%다.
#국민연금 개편#재정안정#노후보장에 무게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