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무역 옛말… 기술규제 등 ‘보이지 않는 관세’ 급증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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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이 세계무역기구(WTO)를 밧줄로 묶었다.’

이달부터 WTO의 분쟁 해결 절차가 사실상 중단되는 것을 두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은 이렇게 지적했다. 지난달 WTO 상소기구의 슈리 바부 체키탄 세르반싱 위원(모리셔스)의 임기가 끝났지만 미국이 신규 위원 선임을 반대하면서 상소기구 위원 7명 중 4명이 공석이 됐기 때문이다. 상소기구 판결은 사건마다 인적 구성을 달리한 3명의 위원이 돌아가면서 맡도록 돼 있기 때문에 핵심 기능이 마비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관세 철폐를 주창하며 1995년 출범한 WTO가 처한 현 상황이 글로벌 통상질서가 자유무역에서 관리무역으로 변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진단한다.

○ 거세지는 미국의 통상압력과 확산되는 갈등

미국발(發) 통상압력은 세계 각국을 동시 다발적으로 겨냥하고 있다.

올 2월 미국이 수입 철강 제품에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한 이후 각국이 대응책을 내놓는 과정에서 갈등은 점점 확산되고 있다. 미국으로 수출되던 철강 물량이 다른 나라로 향하면서 각국은 잇달아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를 검토하거나 실시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미국의 조치 직후 세이프가드 조사를 개시해 7월부터 잠정 조치를 발동했다. 캐나다, 인도, 터키, 유라시아경제연합(EAEU) 등도 철강에 관한 세이프가드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WTO는 각국이 특정 상품 수입 급증 등으로 자국 산업이 위기에 처했을 때 수입 제한 등 세이프가드를 취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 ‘다자-자유무역’에서 ‘양자-관리무역’으로

미국은 WTO뿐만 아니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 다자 체제에 대한 불신을 잇달아 드러내며 다자 체제 대신 양자협상을 통한 자국 이익 챙기기에 나서고 있다.

이 같은 자국 우선주의는 이제 더 이상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만의 주장이 아니다. 미중 무역전쟁의 당사자인 중국뿐 아니라 독일 일본 등 강대국과 인도 브라질 등 신흥국들이 통상 이익을 ‘관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례로 ‘보이지 않는 관세’로 불리는 기술규제(TBT)가 전 세계적으로 늘고 있다. 기술규제는 각국 정부가 기술표준이나 안전기준 등 국내 규제를 통해 해외 제품이 국내에 들어오기 어렵도록 하는 것을 뜻한다. 국가기술표준원에 따르면 WTO 회원국이 기술규제를 실시하겠다고 WTO에 알린 건수는 지난해 2585건으로 역대 최고치였다. 외국의 기술규제가 자국 수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이의를 제기하는 ‘특정무역현안’도 178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 가운데 약 60%는 WTO에 알리지 않은 채 실시된 ‘숨은 규제’였다.

이에 대해 선진국은 신흥국이 시장 개방 시기를 늦추면서 기술 유출, 지식재산권 침해 등 부당한 방법으로 이득을 챙기려 한다고 본다. 반면 신흥국은 선진국들이 세계화와 자유무역의 과실을 챙기기만 하고 기술 이전 등으로 개도국에 이를 나눠 주지 않으려 한다고 비판한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1980년대 후반부터 지속돼온 세계화와 자유무역 기조가 본격적인 조정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트럼프#wto#자국 우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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