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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정원수]현직과 5차례 통화 뒤 수임… 전관예우의 그림자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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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정원수]현직과 5차례 통화 뒤 수임… 전관예우의 그림자 아닌가

정원수 사회부 차장 입력 2018-10-08 03:00수정 2018-10-0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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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수 사회부 차장
“1년 365일 중에 이틀만 쉬고, 363일을 일했다.”

대법원에는 법원행정처에 근무하는 판사 30여 명보다 3배 이상의 법관이 근무하는 곳이 있다. 대법원 사건 심리와 재판 조사에 관한 연구를 담당하는 재판연구관실이다. 16층인 대법원 건물 7∼15층에 흩어져 근무하는 이들은 7∼10층에 사무실을 둔 대법관을 그림자처럼 보좌한다.

법원조직법에 따르면 재판연구관은 1963년 처음 도입됐다. 매년 4만 건 이상 사건을 처리하는 한국 대법원만의 독특한 제도다. 통상 로스쿨을 갓 졸업한 미국 법원의 재판연구원(Law Clerk)과 구별하기 위해 ‘재판을 연구하는 법관(Judicial Researchers)’을 줄여 부른 것이다.

이들은 ‘기초보고’ ‘검토보고서’ ‘의견서’라는 세 종류의 보고서를 생산한다. 보고서는 한글 파일의 ‘휴먼옛체’ 글꼴로 큰 제목만 정해져 있고, 나머지 내용은 재판 기록 등을 보면서 판결문을 쓰듯 자유롭게 채운다. 업무별 편차가 있지만 민사사건 담당 기준으로 1년에 1000건씩 하루 3, 4건의 보고서를 작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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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전문직을 뺀 순수 법관 재판연구관은 현재 99명이 있다. 12명의 대법관 전속연구관이 각 2명씩 모두 24명, 공동연구관이 73명이다. 중노동을 하지만 권한도, 판결문에 이름도 남길 수 없다고 해서 대법원 내부에선 이들을 ‘노비’라고 부른다. 전속조는 사노비, 공동조는 공노비라는 식이다. 1, 2, 3심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기회여서 판사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자리다. 대법관 이상 14명 중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 등 9명이 재판연구관을 지냈다.

보고서를 직접 쓰진 않지만 공동조 보고서와 일부 전속조 보고서를 검토한 뒤 대법관에게 보고하는 자리가 수석 및 선임재판연구관이다. 법원에선 “대법관은 본인 사건만 알지만 수석이나 선임은 다른 사건까지 알고 있다”고 말하곤 한다.

그런데 2014년 2월부터 3년 동안 선임과 수석재판연구관을 지낸 유해용 변호사와 그의 후임인 김현석 수석재판연구관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이들의 검찰 출석을 하루 앞둔 지난달 11일에는 김 대법원장 주재로 대법관 회의가 열렸고, 석 달 넘게 침묵하던 대법관들이 “머리가 하얘질 정도로 충격적”이라는 말을 주고받았다.

유 변호사의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그러나 전직 대법원장이나 법원행정처장 수사 못지않은 비중이 있다고 본다. 우선 ‘청와대 관심사항’이라는 법원행정처 고위 인사의 말에 수석연구관이 재판연구관에게 재판 업무와 무관한 박근혜 전 대통령 ‘비선진료’ 의사의 특허소송 ‘사건요약’ 보고서를 쓰게 했다는 점이다. 청와대 인사가 이해하기 쉽게 보고서 표현과 편집까지 신경 썼다는 검찰 수사가 사실이라면 법관의 일탈이 아닐 수 없다.

다음으로 유 변호사가 올해 5월 31일부터 6월 9일까지 자신의 후임인 김 수석연구관과 5차례나 통화한 것이다. 그 이틀 뒤인 6월 11일 유 변호사 자신이 2015년 선임연구관으로 있으면서 보고서를 쓸 연구관을 지정했던 행정사건을 수임하고, 대법원에 추가보충답변서를 제출했다. 공교롭게도 전원합의체는 취소됐고, 6월 28일 판결이 유리하게 선고돼 전관예우를 의심케 했다. ‘비선진료’ 의사 소송에 도움을 준 변호사와 행정사건을 소개해준 변호사가 동일인이며, 유 변호사와 친분이 있다는 점도 의심스럽다.

김 대법원장은 취임 때부터 사법행정권 남용 진상규명 못지않게 전관예우의 실체를 인정하고, 근절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대법원 판결에 이름 없이 기여한 수많은 재판연구관의 헌신을 헛되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진상 추적은 계속돼야 한다.
 
정원수 사회부 차장 needjung@donga.com
#대법원#법원행정처#김명수 대법원장#전관예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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