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변核’서 한발 더 나간 北… ‘비핵화 동시행동’ 논의 나선 美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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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미 비핵화 협상]北-美 ‘상응조치’ 협상 착수

백화원 영빈관서 오찬… 비건-김여정 배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가운데)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7일 회담 후 백화원 영빈관에서 오찬을 하고 있다. 김정은부터 시계 방향으로 북측 통역 담당자(추정),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앤드루 김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센터(KMC) 센터장,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이연향 국무부 통역국장, 폼페이오 장관. 사진 출처 미국 국무부 홈페이지
백화원 영빈관서 오찬… 비건-김여정 배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가운데)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7일 회담 후 백화원 영빈관에서 오찬을 하고 있다. 김정은부터 시계 방향으로 북측 통역 담당자(추정),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앤드루 김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센터(KMC) 센터장,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이연향 국무부 통역국장, 폼페이오 장관. 사진 출처 미국 국무부 홈페이지
7일 오전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몇 시간 뒤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북한이 취하게 될 비핵화 조치들과 미국 정부의 참관 문제 등에 대해 협의가 있었으며 미국이 취할 상응 조치에 관해서도 논의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나온 상응 조치에 대해 지금까지 언급 자체를 피했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처음 상응 조치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그동안 상응 조치에 대해 “비핵화가 먼저”라는 태도를 유지했던 백악관의 기류가 달라진 배경은 김정은이 이날 폼페이오 장관에게 추가적인 비핵화 카드를 제시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부 안팎에서는 “김정은이 영변 핵시설 폐기 외에 ‘플러스알파’를 언급했을 수 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와 관련한 조치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러면서도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이 원하고 있는 종전선언에 대해선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북-미가 각자 새 카드를 제시하며 거리 좁히기에 나섰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는 의미다.

○ 트럼프, 결국 ‘미국 본토 위협’부터 제거하나

지난해 7월 28일, 미국 워싱턴의 프라임타임(오후 6시경)에 맞춰 김정은이 미 본토를 사정권에 둔 ICBM ‘화성-14형’을 발사하자 한미 양국은 발칵 뒤집혔다. 한미 정상은 우리 군의 미사일 탄두 중량을 늘리는 협의에 즉각 착수하는 조치에 나섰고 한반도 위기는 최고조로 치달았다.

그만큼 미국은 올해 들어 본격화된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미 본토를 직접 겨냥한 ICBM 능력 제거를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꼽았다. 김정은이 대미 유화 제스처로 동창리 미사일 발사대와 엔진시험장의 폐기를 먼저 꺼내든 것도 추후 미 본토를 겨냥한 ICBM을 협상 지렛대로 사용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김정은은 이날 폼페이오 장관을 만나 영변 핵시설 폐기 제안에 더해 ICBM 관련 기술 및 시설의 폐기는 물론이고 미국의 참관까지도 제안했을 것으로 보인다. 한 외교 소식통은 “폐기부터 검증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는 비핵화에 앞서 본토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는 것도 백악관으로선 나쁘지 않다”며 “현실적인 위협을 제거하겠다는 김정은의 언급에 비로소 백악관도 ‘상응 조치’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여기에 폼페이오 장관은 문 대통령에게 “(북-미) 양측이 실무협상단을 구성해 북한의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정상회담 일정 등을 빠른 시일 내에 협의키로 했다”고 설명했다. 김정은이 ‘상응 조치’를 전제로 제안한 영변 핵시설 폐기를 포함한 후속 비핵화 절차를 별도 테이블에서 논의하기로 한 것이다.

○ 靑, 北에 “영변 폐기로는 미흡해” 설득

이런 김정은의 ‘추가 액션’에는 지난달 평양 정상회담 이후 계속된 청와대의 설득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청와대는 ‘영변 핵시설 폐기만으로는 미국이 종전선언에 나설 수 없다’는 점을 북측에 강하게 전달했다”며 “이에 따라 김정은도 폼페이오 장관에게 추가 조치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을 직접 설명한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청와대는 북-미 간 거리 좁히기에도 불구하고 단숨에 종전선언이 이뤄질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폼페이오 장관이 8일 중국을 방문하는 만큼 물밑에서 종전선언 검토가 이뤄질 수는 있겠지만, 북-미가 서로 원하는 카드를 더 내놓고 조율한 뒤에야 종전선언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 역시 이날 트위터에서 “우리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의 합의에 대해 계속 진전을 이뤄가고 있다”면서도 구체적인 성과는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의 추가 조치에 따른 미국의 ‘상응 조치’로는 연락사무소 설치, 인도적 대북 지원 등이 가장 먼저 고려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상응 조치라는 것이 반드시 제재를 완화하는 것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영변 핵기지를 폐기하게 되면 미국 측에 장기간의 참관이 필요할 텐데, 그 참관을 위해서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핵·미사일 시설 폐기 참관을 위해 미국 관계자들이 북한에 머무르는 과정에서 자연히 연락사무소와 비슷한 성격의 조직이 평양에 마련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미국은 비핵화 조치를 직접 확인하고, 북한은 대미 외교 관계 수립의 첫발을 뗄 수 있게 되는 셈이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비핵화 동시행동#상응조치 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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