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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이야기]가을은 풍요와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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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이야기]가을은 풍요와 축복이다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한국기상협회 이사장입력 2018-10-06 03:00수정 2018-10-0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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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한국기상협회 이사장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드리우시고/들판 위엔 바람을 놓아 주십시오/마지막 열매들이 영글도록 명하시어/그들에게 이틀만 더 남국의 따뜻한 날을 베푸시고 완성으로 이끄시어/무거운 포도송이에 마지막 단맛을 넣어주십시오.”(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가을날’)

서양 사람들은 가을의 풍성한 선물이 포도의 단맛이라고 말한다. 1120년경 역사가인 맘즈베리의 윌리엄은 잉글랜드 서부 글로스터 계곡을 여행했다. 그는 풍요로운 가을 풍경에 감탄했다. “대로와 길가에는 과일이 잔뜩 달린 나무들이 늘어서 있다. 잉글랜드에서 가장 포도가 달고 많이 열리는 지방이 바로 이곳이다.” 윌리엄은 가을의 풍성한 햇빛과 높은 온도가 포도의 당도를 높여주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의 가을은 서양의 가을보다 더 풍성한 축복 받은 계절이다. “전쟁으로 할퀴고 발기고 해도/가을만은 제자리에 두어 두십시오/기름 한 방울 나지 않아도 좋으니/가을만은 제때에 두어 두십시오.” 조국의 가을을 누구보다 사랑했던 이은상 시인이다. 그는 전쟁의 와중에서도 가을만은 그대로 두어 달라고 노래했다. 가을은 6·25를 겪고 있던 한민족의 마지막 소망이었는지도 모른다.

“옹달샘에 가라앉은 가을 하늘/쪽박으로 퍼 마시면/쭉 입 속으로 들어오는/맑고 푸른 가을 하늘.”(손광세의 동시 ‘가을 하늘’) 가을에는 가슴이 아리도록 맑고 파란 하늘이 있다. 하늬바람을 타고 유영하는 빠알간 고추잠자리도 있다. 곡식들은 황금빛으로 물든다. 코스모스가 한들거리고, 들국화가 소박한 꽃잎을 피워 올린다. 보릿고개를 지나 한여름을 등이 휘도록 땀을 흘린 농부는 허리를 편다. 곳간 가득 채워진 가을의 수확은 그 자체로 축복이다. 가을하늘 아래 있는 그 어떤 것들도 아름답고 풍요롭지 않은 것이 없다. 날씨가 맑고 곳간이 차면 인심은 넉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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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꽃이에요/잎은 나비에게 주고/꿀은 솔방벌에게 주고/향기는 바람에게 보냈어요/그래도 난 잃은 건 하나도 없어요/더 많은 열매로 태어나는 거예요/가을이 오면.”(김용석의 동시 ‘가을이 오면’) 나눔으로써 더 풍요해지는 참사랑의 본질을 노래한 시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가을의 풍성함을 어렵고 소외된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사랑의 미덕을 가지고 있었다. 어린 시절 내 고향에서는 독특한 ‘이삭서리’라는 풍습이 있었다. 마을 아낙들이 틈틈이 주워 모은 이삭으로 떡을 빚었다. 마을의 고독한 노인이나 홀어미, 홀아비, 고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어려운 이웃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는 ‘정(情)가름’이라는 풍속도 있었다. ‘치계미(雉鷄米)’라 하여 마을 사람들이 곡식이나 돈을 추렴하여 연세 많은 노인들에게 선물로 드리기도 했다. 추렴에는 머슴 사는 사람이나 논 한 뙈기, 밭 한 뙈기 없는 가난한 집에서도 기쁘게 동참을 했다.

주고 다 주어도 줄 것이 남아 있다는 연인들의 마음처럼, 더 주지 못해서 안달을 하고, 더 사랑하지 못해서 고민을 하는 사랑의 마음을 가졌던 민족이 바로 우리네였다. 주말 한반도로 다가오는 태풍도 피해 없이 지나가 아름다움을 함께 나누는 가을이 계속됐으면 좋겠다.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한국기상협회 이사장
#가을#계절#태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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