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명건]사법부의 탈출구는 특별재판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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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건 사회부장
이명건 사회부장
이대로는 안 된다. 법원이 불신의 수렁으로 점점 빠져들고 있다. 과거 법원의 재판 거래 의혹이 검찰 수사 대상이지만 현재 법원이 의혹을 키우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법원의 전·현직 판사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기각이 ‘제 식구 감싸기’나 ‘수사 방해’라는 인식이 사회 전체에 팽배한 것이다. 법치주의에 어긋남이 없다는 법원의 주장은 공허해진 지 오래다.

법원이 최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차량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했지만 검찰 관계자는 “추수한 논에서 이삭줍기”라고 했다. 퇴임한 지 1년이 지났는데 자택 압수수색 영장은 기각하고 차량만 발부해 수사의 실효성이 거의 없다는 의미다. 판사들의 인터넷 비공개 커뮤니티에는 현직 판사가 쓴 “영장 발부 시늉인가? 기각 시늉인가?”라는 제목의 비꼬는 글이 올라왔다.

이런 상황에선 수사 장기화가 불가피하다는 게 검찰의 자세다. 규명해야 할 의혹은 계속 쌓이고 있는데 입증 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압수수색에 자꾸 제동이 걸려 어쩔 수 없다는 것. 이 상태에서 수사 마무리 시점은 빨라야 올해 말이고 내년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판결 승복의 법원 권위는 거듭 추락할 수밖에 없다. 재판 거래 혐의의 피의자나 관여자로 검찰 조사를 받고 압수수색을 당하는 판사의 판결을 누가, 얼마나 공정하다고 믿어줄 것인가. 그 불신은 유죄 판결을 전제로 기소하는 검찰로 번질 게 분명하다.

그래서 검찰의 법원 수사는 신속하면 신속할수록 좋다. 그게 법원과 검찰을 다 살리는 길이다. “수사를 철저하고 신속하게 마무리해야 한다. 법원을 살리기 위한 수사다. 법원이 무너지면 검찰도 무너진다”고 한 수사 책임자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의 판단에 동의한다.

하지만 지금의 법원 재판 절차로는 그렇게 안 된다. 기존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재판부가 압수수색이나 구속영장을 기각할 때마다 의혹이 한 켜 한 켜 쌓여 수사 연장의 원인을 제공하니 말이다. 설령 재판 절차의 변화 없이 검찰 수사가 마무리된다 해도 그 다음이 더 문제다. 검찰이 기소할 전·현직 판사들에 대해 법원이 무죄를 선고할 경우 또다시 ‘제 식구 감싸기’ 의혹이 제기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특히 법원행정처나 대법원 재판연구관 근무 경력의 재판부 판결이라면 ‘카르텔’ 비난도 나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른 사건 판결들까지 불공정 시비에 휩싸여 결국 사법체계 전체가 무너져 내릴 수 있다.

대안은 있다. 특별재판부다. 그 개념은 특별검사와 동일하다. 수사의 공정성 담보를 위해 도입된 특검이 검찰과 별개인 것처럼 특별재판부는 기존 법원 재판 조직과는 별도로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나 특검이 검찰 외부 조직인 것처럼 특별재판부가 법원 밖에 설립될 수는 없다.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는 헌법 제101조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이미 더불어민주당 의원 57명이 이런 방안을 담은 법안을 국회에 발의했다. 재판 거래 연루 의심을 받지 않는 영장전담 법관과 1심, 2심 재판부 후보를 법원 안팎 인사로 구성된 특별재판부후보추천위원회가 추천하고 대법원장이 임명하는 게 골자다. 물론 법원 내부는 “사법부 독립 침해”라며 반발하는 기류가 강하다.

그러나 새로운 길을 가지 않으면 불신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기 힘든 게 법원이 처한 현실이다. 소크라테스는 좋은 판사의 네 가지 자질을 △겸손하게 잘 듣고 △지혜롭게 대답하며 △냉철하게 판단해 △치우치지 않게 결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겸손하게 잘 듣는 게 시작이고 기본이다. 사법부는 특별재판부 도입 촉구 여론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이명건 사회부장 gun43@donga.com
#법원#양승태#사법부#특별재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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