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넷플릭스發 ‘한류의 역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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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권 영화-드라마 한국계 열풍, 현지 인기 편승 국내 역수입도 활발

영화 ‘서치’는 온라인 공간에 남은 흔적을 통해 실종된 딸을 찾아가는 아버지의 사투를 그렸다. 인도 이민자 출신인 아니시 차간티 감독은 유색인종을 주인공으로 한 스릴러 영화를 만들고자 했으며, 시나리오 집필 때부터 한국계 배우 존 조를 염두에 뒀다고 밝혔다. 소니픽처스코리아 제공
영화 ‘서치’는 온라인 공간에 남은 흔적을 통해 실종된 딸을 찾아가는 아버지의 사투를 그렸다. 인도 이민자 출신인 아니시 차간티 감독은 유색인종을 주인공으로 한 스릴러 영화를 만들고자 했으며, 시나리오 집필 때부터 한국계 배우 존 조를 염두에 뒀다고 밝혔다. 소니픽처스코리아 제공
《미국을 ‘기회의 땅’이라 하지만, 그동안 할리우드에서 아시아계 배우에게 주어진 기회는 제한적이었다. 아시아계 배우는 무림 고수, 얼뜨기 이민자 같은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았고 아시아인 역할에 백인을 투입하는 ‘화이트워싱’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할리우드에서 새로운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아시아계, 그중에서도 한국인이 주인공인 영화와 드라마가 북미권에서 제작돼 한국으로 역수입되는 ‘할리우드발(發) 한류’가 부상하고 있다.》

올해 초 선댄스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았던 영화 ‘서치’는 지난달 국내 박스오피스에서 가장 눈에 띈 작품이었다. 실종된 딸을 찾는 아버지의 분투를 그린 이 작품은 개봉 2주 차에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며 순위를 역주행했고, 누적 관객 290만 명을 끌어 모았다.

구글 출신의 20대 감독이 러닝타임 내내 컴퓨터와 스마트폰 화면으로만 스크린을 채우며 독특하게 구성한 것도 매력적이다. ‘서치’에서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할리우드 스릴러 영화에서 아시아계 배우가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작품이라는 점이다. 한국인 이민자 가정이 배경이어서 주요 배역을 한국계 배우들이 맡았다. ‘스타트렉’의 술루 역으로 유명한 존 조가 단독 주연인 점도 의미심장하다. 2016년 아카데미 주조연상 후보 20명 전원이 백인으로 채워지자 세계 누리꾼들이 항의의 의미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StarringJohnCho(존 조 캐스팅)’이라는 해시태그를 올리는 운동을 벌인 바 있다.

할리우드발 한류는 넷플릭스에서도 두드러진다. 8월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는 금발 여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하이틴 로맨스 코미디의 여주인공으로 한국계 미국인을 세우는 파격을 선보였다. 한국계 작가 제니 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한국계 이민자 가정의 생활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소소한 재미를 더한다. 영화에 소품으로 등장한 한국식 요구르트, 마스크팩이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위 사진)와 ‘김씨네 편의점’은 각각 한국계 작가의 소설과 연극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어서 한국계 이민자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위 사진)와 ‘김씨네 편의점’은 각각 한국계 작가의 소설과 연극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어서 한국계 이민자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지난달 한국 넷플릭스에서 서비스하기 시작한 ‘김씨네 편의점(Kim‘s Convenience)’도 있다. 캐나다 CBC에서 제작한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편의점을 운영하는 한국계 이민자 가족이 등장하는 가족 시트콤이다. 이민자 가정에서 흔히 발생하는 세대 간 갈등을 유쾌하게 그려내 인기를 끌고 있다. 2019년 시즌3 제작도 확정됐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있다. ‘김씨네…’만 해도 한국인 관광객을 외모 치장에만 신경 쓰는 인물들로 묘사하거나, 조연배우의 이름을 ‘김치’로 짓는 등 인종적 편견을 드러낸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외전 격인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 역시 악당 볼드모트가 기르는 뱀 내기니 역에 한국인 배우 수현을 캐스팅해 논란이 일었다. 볼드모트에게 철저히 이용당하면서도 순종적인 내기니 역에 수현을 발탁한 건 아시아 여성을 순종적인 백인 남성의 소유물로 그려내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할리우드 영화들이 아시아계 배우를 단순히 ‘동양인’에 국한시키지 않고 ‘한국계’ 같은 구체적인 정체성을 부여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이제 시작인 만큼 다양한 장르에서 보다 많은 인종의 배우들이 연기할 기회가 열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서치#넷플릭스#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김씨네 편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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