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부형권]폼페이오-리용호, 강경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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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형권 국제부장
부형권 국제부장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 인공기와 미국 성조기는 화제가 됐다.

여섯 개의 인공기와 여섯 개의 성조기를 엇갈려 12개의 국기를 세워놓은 걸 보고 “‘6월 12일’이란 기념비적인 날짜를 상징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적대관계인 두 국가의 국기가 의외로 케미스트리(호흡)가 맞는다’는 얘기도 있었다. 두 국기 모두 빨강 파랑 하양 3색으로 구성돼 있고, 별이 새겨져 있다는 점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는 설명이었다.

9월 18일 평양 3차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한국 태극기와 북한 인공기가 논란이 됐다.

평양 순안공항에 내린 문재인 대통령의 전용기엔 태극 마크가 선명했지만 수많은 평양시민이 흔든 깃발은 한반도기와 인공기였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가 자신의 트위터에서 “문 대통령 도착 시 일반 의례관례 어긋나게 인공기와 한반도기만 들게 함. 이것은 북한의 정통성을 강조 의도.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방문 시는 형평성 보장 위해 아무런 깃발도 걸지 않음”이라고 지적했다. 반대로 일부 진보 매체와 전문가들은 “남북 정상회담에서 최초로 한반도기가 등장한 것은 ‘남북관계를 중시하겠다’는 진일보한 변화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북한 입장에서 보면 “평양에서 태극기를 흔드는 건 ‘한반도에 두 나라(남북한)가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게 되는데, 아직은 시기상조 아니냐”는 ‘내재적 현실적 시각’도 있다. 이런저런 논란에 대해 “김정은이 서울에 왔을 때는 태극기와 한반도기만 내걸면 되지 않느냐”는 이들도 적지 않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평양 남북 정상회담 때 “남북기본합의서의 연장선에서 남북문제를 협의해 나가자”는 태도를 견지했다. 그만큼 1992년 2월 19일 발효된 합의서는 남북관계의 교과서와 같다. 전문에 ‘남북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것을 인정하자’고 쓰고, 1장 1조엔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고 못 박았다. 북한 전문가들은 “이 합의서 정신에 입각하면 한반도기만 흔들거나 한반도기, 태극기, 인공기 등 3개의 깃발을 모두 흔드는 게 적절했다”고 말한다. 그랬으면 김 위원장 방남 때 국기 논란도 아예 없을 것이란 얘기다.

북-미 간엔 화제를 낳고, 남북 간엔 논란이 되는 장면은 지난달 유엔총회 기간에도 있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총회 기간 뉴욕에서 ‘카운터파트’로 지목한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회담했다. 두 장관이 공개적으로 비핵화 문제를 논의한 것은 처음이다. 리 외무상은 중국 일본 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국 외교장관과 모두 회동했지만 한국의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는 끝내 따로 만나지 않았다. 한국 정부 관계자들은 “(북한은) 남북이 외국이 아니기 때문에 외국 대표들처럼 만나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입장을 견지하는 것 같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2000년 사상 첫 남북 정상회담 직후인 같은 해 7월 태국 방콕에서 개최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사상 첫 남북 외교장관 회담이 열렸다. 그 후로도 남북 외교장관 간 회동은 여러 차례 있었다.

폼페이오 장관의 북한 파트너는 리 외무상이고, 한국 파트너는 강 장관이다. 그런데 리 외무상은 강 장관을 비핵화 논의의 파트너로 여길 의사가 없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우여곡절은 있지만 남북미 정상 간 대형 이벤트가 연결되며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러나 비핵화의 디테일까지 정상들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할 순 없다. 남북미 외교장관 3각 파트너십의 어긋난 한 축이 하루빨리 바로잡혀야 하는 이유다.
 
부형권 국제부장 bookum90@donga.com
#폼페이오#리용호#강경화#북미 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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