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제재 완화는커녕 토씨 하나 안변해”… 美에 불만 표출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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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비핵화 협상]리용호, 유엔서 美에 강공

리용호 북한 외무상의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유엔총회 기조연설은 최근의 북-미 협상 재개 움직임을 감안하면 예상보다 대미 비판의 수위가 높다. 지난해보다 표현과 내용이 정제됐음에도 미국의 선(先)비핵화 조치 요구와 대북제재에 강한 불만을 표출하며 행정부와 의회 내 강경파를 압박했다. ‘영변 핵시설 사찰’ 등을 놓고 조만간 본격화될 미국과의 비핵화 실무협상 주도권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 거꾸로 미국에 ‘신뢰’ 보여 달라는 리용호

15분가량의 연설에서 리 외무상은 ‘신뢰’를 가장 자주 언급했다. 북-미 간 신뢰 부족을 지적하는 ‘불신’ 등의 관련 표현을 합치면 모두 18번이나 사용했다. 핵심 메시지는 결국 미국이 먼저 종전선언 등 북한의 체제와 안전 보장을 위한 상응 조치를 취해야 북한이 비핵화의 구체적인 조치를 이행하겠다는 것.

지금까지는 직접 언급을 자제했던 대북제재 완화를 본격적으로 거론한 것도 눈에 띈다. 리 외무상은 “핵시험과 로켓 시험발사가 중지된 지 1년이 되는 오늘까지 제재 결의들은 해제되거나 완화되기는커녕 토(씨) 하나 변한 게 없다”고 주장했다. 193개 회원국이 모이는 글로벌 외교무대이자 대북제재 결의를 주도하는 유엔에서 북한의 경제개발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지원이 필요하다는 메시지가 동시에 깔려 있다.

리 외무상의 발언은 미국 워싱턴과 뉴욕, 오스트리아 빈 등지에서 여러 채널로 진행될 비핵화 실무협상을 앞두고 북-미 간 치열한 기싸움이 벌어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톱다운 방식으로 정상 간 논의가 이뤄졌지만 구체적인 협상 디테일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라며 “북한이 큰 협상을 앞두고 처음부터 세게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리 외무상은 공격의 대상을 미국 내 ‘정치적 반대파’로 규정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김정은 위원장과 사랑에 빠졌다”고 말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깐깐한 실무협상팀을 분리하며 대응하는 전략이다.

○ CBS 방송 “종전선언 협상 테이블에 오를 듯”

이런 북한을 향한 미 국무부의 대응에도 과거와는 다른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미 국무부 관계자는 리 외무상의 날 선 비판에도 “북한을 위한 보다 밝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과 관련된 약속 이행에 대해 계속 북한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미 비핵화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뒤 미국이 줄곧 “북한의 비핵화 이행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강조했던 것과는 온도 차가 느껴진다.

이런 기조가 계속 이어질지는 이달 초·중순으로 예상되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4차 방북을 기점으로 이뤄질 실무협상의 내용과 속도에 달려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과 특정 시설, 특정 무기에 대한 대화가 오가고 있다”며 북한과 구체적인 물밑 대화가 이어지고 있음을 밝혔다. 이에 대해 CBS 방송은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과의 협상을 준비하면서 종전선언을 협상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부는 북한이 종전선언에 이어 영변 핵시설 폐기 이후 단계까지 염두에 두고 제재 문제까지 본격적으로 거론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영변 핵시설에 대한 검증 및 사찰을 통해 미국이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하면, 다음 단계로 제재 해제가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못 박으려 한다는 것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날 미국의 상응조치를 요구한 리 외무상의 연설에 대해 “분명히 필요한 부분”이라며 종전선언 등에 대한 미국의 전향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뜻을 내비쳤다. 뉴욕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강 장관은 “오랜 세월의 적대를 해소하고, 관계를 개선하면서 비핵화를 끌어나가는 데 있어서 한 단계, 한 단계가 다 신뢰 구축 조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정은 lightee@donga.com·문병기 기자
#제재 완화#불만 표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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