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김윤종]반복되는 국민연금 개혁 데자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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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종 정책사회부 차장
김윤종 정책사회부 차장
“20∼30년 뒤 국회에선 2018년 당시 국민연금 책임자에 대한 청문회가 열릴지 모릅니다. 이번에는 반드시 개혁해야 합니다.”

6월 보건복지부 고위관계자가 한 말이다. 두 달 뒤 발표될 4차 국민연금 재정추계에서 연금 고갈 시기가 앞당겨질 것이 자명한 만큼 국민이 반대해도 보험료 인상, 소득대체율 조정을 꼭 이뤄내야 한다는 얘기였다.

석 달이 지난 이달 18일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을 만나 “국민이 선택할 수 있는 안을 넓게 제안하고 국회에서 다수가 지지하는 안을 채택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8월 발표된 4차 재정추계 결과 예상대로 국민연금 고갈 시기는 2057년으로, 당초보다 3년 앞당겨졌다. 이에 연금제도발전위원회가 보험료 인상, 수급연령 상향조정 등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권고하자 반발 여론이 빗발쳤다. 그러자 박 장관은 정부 개편안을 복수로 만들겠다고 밝힌 것이다.

현재의 국민연금은 낸 돈보다 더 많이 받는다. 당연히 ‘지속불가능’하다. 결국 지금보다 더 내거나 덜 받는 게 유일한 해법이다. 하지만 박 장관이 복수안을 만들어 국민의 의사를 묻겠다고 밝히는 순간, 유일한 해법과는 멀어질 공산이 커졌다.

젊은 세대는 “늙으면 연금을 못 받는 것 아니냐”며 제도 자체를 불신한다. 중년이나 고령층은 연금을 더 늦게 받거나 적게 받는 개편에 반대한다. 기성세대와 미래세대 모두가 고통을 분담해야 연금 개혁이 가능한 상황에서 ‘국민 다수가 동의하는’ 안을 과연 만들 수 있을까? 이는 결국 세대 간 ‘세 싸움’을 붙이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여기엔 문재인 대통령의 ‘가이드라인’이 한몫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국민연금의 주인은 국민이므로 제도 개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적 합의”라며 국민 동의 없는 개편은 없다고 못 박았다.

그러나 앞선 사례를 보면 국민이 동의하는 국민연금 개혁이 가능한지 의문이다. 2003년 1차 재정추계 당시 15.9%로 보험료를 올리는 개편안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폐기됐다. 2013년 3차 재정추계 때도 보험료를 14% 올리는 안이 여론 악화로 백지화됐다.

이번 정부안이 다음 달 국회에 제출되면 내년 1년간 논의과정을 거친다. 문제는 2020년 4월 총선이 열린다는 점이다. 2022년은 ‘대선의 해’다. 의견수렴을 이유로 시간을 끌다가 다음 정부로 ‘폭탄’을 넘기는 역사가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

연금개혁은 정권에 큰 부담이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은 2007년 취임 후 국민연금을 개편했다가 지지율 하락으로 다음 대선에서 패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 역시 연금 개편을 추진한 결과 2005년 총선에서 졌다. 그럼에도 연금개혁은 이들의 가장 큰 치적이다.

한국은 출산율 0명대인 ‘저출산’과 인구의 5분의 1이 노인인 ‘고령화’를 동시에 겪고 있다. 연금을 낼 사람은 줄어드는데 받을 사람은 급증하는 상황에서 ‘국민 뜻에 따르겠다’는 정부 선언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지금 필요한 건 모두가 균등하게 고통을 나누는 단일안을 만들어 국민을 설득하는 일이다. 부디 20년 뒤 박 장관을 비롯한 국민연금 책임자들이 청문회장에 서지 않기를 바란다.
 
김윤종 정책사회부 차장 zozo@donga.com
#국민연금#국민연금 개혁#저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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