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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式 ‘한반도 큰 그림’ 속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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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式 ‘한반도 큰 그림’ 속살

이종훈 | 정치평론가 입력 2018-09-23 15:53수정 2018-09-23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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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이후 모든 대통령이 통일 대통령을 꿈꿨다. 그 나름의 ‘한반도 큰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아직 완성한 사람은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떨까?

벌써 2차 남북 정상회담까지 열었다. 3차 남북 정상회담을 거치면 한발 더 나아간다. 남북 정상회담을 1년에 세 번 하는 것만으로도 역대 대통령 누구도 달성하지 못한 업적인지 모른다. 사상 초유의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데 기여한 것도 무시할 수 없다.

2차 북·미 정상회담도 열릴 가능성이 있다. 3차 남북 정상회담을 거쳐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지나 북핵 폐기와 종전선언, 평화협정까지 이뤄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유엔과 미국의 대북제재가 완화될 것이고, 남북한 경제협력도 본격화할 것이다. 북한을 경유한 중국-러시아-유라시아와의 연계사업도 활발해질 것이다. 남북한 경제공동체를 넘어 동북아 경제공동체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환황해, 환동해, 남북접경지역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빅 픽처는 무엇일까? 대선 공약인 ‘한반도 신경제지도’에 기본 내용이 담겼다. 남북한을 H자 형태의 3대 경제벨트로 연결하는 것이 핵심이다. 서해안 지역을 남북으로 잇는 환황해 경제벨트, 동해안 지역을 남북으로 잇는 환동해 경제벨트, 휴전선 등 접경지역을 동서로 연결하는 남북접경지역 평화벨트가 그것이다.

환황해 경제벨트는 산업·교통·물류가 중심이다. 개성공단 재가동, 평양과 신의주 같은 지역의 신규 산업특구 공동개발,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이 핵심이다. 환동해 경제벨트는 관광·자원 개발이 중심이다. 경원선 철도·도로 연결 이후 금강산 등 북한 동해안 지역 관광 활성화, 희토류 등 자원 개발이 점쳐진다.

이 신경제지도의 연장선에 ‘신북방정책’이 있다. 경원선을 경유해 러시아의 전력·가스·자원을 수입하는 구상이다. 지난해 9월 러시아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신북방정책’의 일환으로 ‘9개 다리(9-Bridge) 행동계획’을 제안했다. 가스, 철도, 전력, 조선, 일자리, 농업, 수산, 항만, 북극항로 개척, 이 9개 분야에서 남북한과 러시아, 중국, 몽골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하자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8월 15일엔 동북아 6개국과 미국이 함께하는 ‘동아시아철도공동체’를 제안하기도 했다.

남북한 경제공동체를 넘어 동북아 경제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문 대통령의 한반도 큰 그림은 과거 대통령들의 그것보다 획기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철도, 에너지, 녹색기술을 중심으로 ‘신실크로드’를 건설하자고 러시아 측에 제안했다. 북한이 핵을 폐기하고 개방에 나서면 1인당 국민소득 3000달러 수준까지 지원하겠다는 ‘비핵·개방3000’ 정책도 냈다. 여기에 북한 철도·도로 건설, 특히 신의주까지의 고속도로 건설을 포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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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이 내세운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도 남북한과 유라시아 대륙을 하나의 경제공동체로 묶겠다는 것으로, 철도 연결이 기본 사업이다. 그것이 바로 ‘실크로드 익스프레스’다. 한반도 종단철도(부산-나진-러시아 하산), 시베리아 횡단철도(블라디보스토크-모스크바), 유럽철도(모스크바-파리) 구간 1만5000㎞를 하나로 묶는 것이다.

러시아 시베리아 자원 개발에 대한 참여 논의는 이미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시작됐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북방정책을 폈다. 러시아 극동지역의 자원 개발이 한때 상당히 관심을 끌었다. 이런 사업들은 한·러 정상회담에서 빠지지 않는 주제가 됐지만 아직까지 장기 미제로 남아 있다. 북한을 경유해 러시아산 가스와 광물자원을 수입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과거 대통령들도 추진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한 이유는 단 하나, 북한의 강력한 세습체제 유지 욕구 때문이다. 북한은 세습체제가 무너질까 두려워해서 개혁과 개방에 소극적이었다. 여기에다 핵무기 개발에 적극 나섰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그 두려움 때문에 집권 후 최근까지 핵무기 개발에 몰두했다.

그렇게 어렵게 개발한 핵무기를 일부 또는 전부 포기하는 조건으로 김정은 위원장은 체제보장과 경제협력을 얻어내려는 것으로 보인다. 개혁과 개방도 본인 주도로 진행하길 원하는 듯하다. 변화한 국제사회 환경에 맞춰 장기집권을 보장받는 전략으로 바꾸기로 한 것이다. 이런 김 위원장의 전략 수정에 따라 한반도 큰 그림을 실행할 여건도 급격히 좋아졌다고 볼 수 있다. 한반도 큰 그림을 실행할 경우에 발생하는 경제적·안보적 이점은 어떤 것일까?

4월 29일 DMZ 관광 열차가 경기 파주시 임진각 경의선 철교를 지나고 있다. [홍진환 동아일보 기자, 동아DB]

개성공단 100배 늘어날까?

경제 측면에서, 첫 번째 이점은 단연 값싼 노동력 확보다. 북한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다면, 우리 기업들이 저임금을 좇아 중국과 동남아 각지를 떠돌아다닐 이유가 없다. 동남아에서 생산한 제품을 주로 미국과 중국으로 수출한다는 점에서 물류비를 절약하는 추가적인 이점도 발생한다.

이는 이미 개성공단이 입증한다. 2016년 2월 10일 박근혜 정부가 개성공단을 폐쇄할 당시 제조업체는 125개, 이들 기업에 생활 인프라와 물품을 공급하는 기업은 75개에 달했다. 2018년 4월 중소기업중앙회와 개성공단기업협회가 개성공단에 입주했던 101개 기업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의 69.3%가 조건부 재입주를 희망했다. 기본적으로 재입주를 적극 고려하겠다는 의미다. 무조건 재입주하겠다고 응답한 업체도 26.7%에 달했다.

이들은 저렴한 인건비를 첫 번째 이점으로 꼽았다. 그다음으로 지리적 이점과 저렴한 물류비를 꼽았다. 1차 남북 정상회담 이후 개성공단 입주 문의도 늘어난 것으로 알려진다. 문 대통령은 개성공단을 현재의 200만 평 규모에서 10배인 2000만 평 규모로 확장하는 계획도 대선 당시 공약했다.

두 번째 이점은 자원 조달 비용 절감이다. 북한산, 러시아산, 중국산 자원을 조달해 에너지나 원재료로 활용할 수 있다. 아프리카, 호주로부터 자원을 조달하는 것에 비해 물류비가 크게 줄어든다.

6월 문재인 대통령의 러시아 국빈방문 당시 정승일 한국가스공사 사장이 경제사절단의 일원으로 동행해 러시아 민간 천연가스 생산업체인 노바텍과 ‘북극 LNG(액화천연가스)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정 사장은 러시아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이렇게 밝혔다.

“한반도 비핵화, 국제 대북제재 해제 등이 북한 경유 가스관 건설 사업 진전의 전제조건이다.” “한국가스공사는 오랫동안 러시아 측 파트너들과 이 프로젝트에 대해 계속 협의해왔다. 조건만 갖추어지면 러시아 파트너들과 이 프로젝트에 대한 협의를 쉽게 재개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러시아에 에너지 종속될 가능성

대북제재만 풀리면 이 사업을 곧바로 본격화할 태세다. 이 문제는 8월 21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논란이 됐다. 김규환 자유한국당 의원은 한국가스공사가 7월부터 남·북·러 PNG 사업 추진과 관련해 러시아 가스프롬을 비밀리에 접촉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의혹의 진위를 떠나 한국가스공사가 러시아 가스프롬과 PNG 공동연구를 진행 중인 것은 사실이다. 한국가스공사 측도 6월 한·러 정상회담 이후 사전 준비작업 차원에서 진행 중이라고 해명했다. 문제는 북한이 대북제재를 피해 이미 러시아산 가스를 수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점이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에 따르면, 북한은 러시아산 액화가스를 대량으로 수입해 일반 주민에게 보급하고 있다.

세 번째 이점은 전력 조달 비용 절감이다.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추진 중이다. 원자력발전을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신재생 에너지 발전으로 대체하겠다는 것이다. 석탄 화력발전소를 가스 화력발전소로 전환하는 계획도 함께 추진한다.

문제는 이들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한 발전 단가가 원자력에 비해 비싸다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전기료를 동결하기 어렵다. 하지만 전기를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수입하면 이야기는 달라질지 모른다. 지난 6월 한·러 정상회담 당시 산업통상자원부는 러시아 에너지부와 ‘한·러 전력 분야 협력 정부 간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양국의 전력망을 연계한다는 내용이다.

러시아 극동 아무르주 부레야 수력발전소는 연간 7100GWh의 전력을 생산한다. 러시아 극동 전체의 수력발전 잠재력은 연간 1139TWh에 달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2016년 전력 총 생산량은 526TWh 수준이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이 부분도 은밀하게 포함돼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전력은 러시아 국영 전력회사 로세티와 한·러 전력망 연계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를 시행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에 따라 남북한과 중국, 러시아, 몽골, 일본의 전력망을 연계하는 동북아 슈퍼그리드 프로젝트에 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크림반도의 교훈

이런 내용의 한반도 큰 그림이 안보에 어떤 의미를 지닐까?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공존한다. 긍정적 측면은 남북한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의 경제적 연계성이 높아지면서, 어떤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도발할 위험성이 낮아지는 점이다.

부정적 측면은 어떤 한 나라가 자국이 주도하는 분야에서 일방적 조치를 취할 경우에 발목이 잡힐 수 있는 점이다. 2014년 러시아가 동유럽 국가들에 공급하기로 한 가스 물량을 갑자기 절반 가까이 줄이면서 갈등을 빚은 일이 대표적 사례다. 이것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령 크림반도를 침공하는 군사문제와도 긴밀히 연결됐다.

이런 일이 한반도에서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러시아산 가스 도입 확대는 미국의 셰일가스를 수입하는 것과도 충돌한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 당시 가스 수입의 30%를 정도를 러시아에 의존하던 유럽연합(EU) 국가들은 미국산 셰일가스로 도입선을 바꾸면서 위기를 피해나갈 수 있었다. 이후 미국은 동유럽 국가들에 대한 셰일가스 수출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러시아산 가스와 미국 셰일가스 사이에서 선택이 가능한 상황은 그나마 우리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맨 왼쪽)이 지난해 9월 7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동방대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에서 연설하고 있다. [원대연 동아일보 기자]
러시아산 전력 수입은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곧바로 미국산 전력으로 대체하는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러시아가 전력을 무기화할 경우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가능성이 있다.

이제 문재인 식(式) 한반도 큰 그림의 속살을 들여다보자. 몇몇 전문가는 “한반도 큰 그림은 수많은 대형 사업으로 이뤄진다. 철도, 도로, 전력, 가스, 자원 그리고 공단 건설까지 전체 규모를 가늠하기 어려워 단군 이래 최대 사업이 될지 모른다”고 말한다.

이 사업을 주도할 주체가 누구일까? 일부 정치권 인사는 “노무현 정부 시절처럼 진보 성향 인사들 내지 단체들이 담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슈퍼그리드 사업의 경우 사업 주체는 한전이 될지 모른다. 김종갑 한전 사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산업자원부 차관보, 특허청 청장, 산업자원부 차관을 거친 인물이다. 문재인 대통령 대선캠프에서 경제정책을 만드는 데 기여한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한전 사장으로 추천한 것으로 알려진다. 김 사장은 취임 후 이사진을 대거 교체했는데,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시민캠프 공동대표이던 최승국 태양과바람에너지협동조합 이사를 임명했다.

9월 7일 (사)유라시아평화철도포럼은 (사)희망래일과 ‘유라시아 횡단 평화철도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 포럼의 대표는 친문재인계 양기대 전 광명시장이다. 양 전 시장은 6월 지방선거 당시 더불어민주당 경기지사 경선에 나서기도 했다. 이 포럼 창립식에 송영길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민주당 의원)도 참석했다.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대표 경선에서 2위를 해 최고위원이 된 송 위원장은 민주당 동북아평화협력특별위원회 위원장에도 임명됐다.

송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소프트뱅트 손정의 회장을 만나서 동북아 슈퍼그리드 사업을 논의해서 눈길을 끌기도 했다. 동북아 슈퍼그리드 사업을 처음 구상한 인물이 손 회장이다. 문 대통령도 2012년 6월 손 회장과 만나 본인의 탈원전 구상을 밝히면서 슈퍼그리드 사업에 큰 관심을 표명했다.

문 대통령이 탈원전 정책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바로 슈퍼그리드에서 희망을 본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이면에 러시아산 전력 수입 계획이 자리 잡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어른거리는 진보·운동권 그림자

태양광 사업에도 진보 성향 사람들이 많이 어른거린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8월 “소위 활동가로 변신한 운동권 세력들이 협동조합 형태로 뭉쳐서 이 협동조합에 이 사업들을 주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태양광 사업을 학생운동권 출신들이 장악했다는 소문도 있다. 지난해 허인회 전 열린우리당 청년위원장이 녹색드림협동조합을 구성해 서울시의 태양광 사업 일부를 수주한 것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슈퍼그리드 사업에도, 동북아 철도공동체 사업에도 이런 식으로 학생운동권 출신들이 직간접적으로 간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임종석 비서실장의 경우에도 공직에서 물러난 시절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을 창설해 방송 관련 대북사업을 수행한 것으로 알려진다. 대통령비서실에는 전직 진보 성향 시민단체 출신이 적지 않다. 이들 또한 대통령비서실을 떠날 때 공공기관에 자리를 구해 내려가거나 시민단체에 복귀 또는 새로운 시민단체를 창설하는 방식으로 문재인 정부의 각종 사업에 참여할 개연성이 높다.

이런 일은 지난 보수 정권에서도 일어난 일이긴 하다. 하지만 일부 인사들은 “적폐의 씨앗이 되는 이런 사업구도가 진보 정권에서도 반복된다면, 정말 적폐 청산이 가능할까 하는 점에서 우려가 없지 않다”고 말한다. “더구나 판문점 선언과 이러한 한반도 큰 그림의 이행을 위해선 천문학적 규모의 국가 예산이 북한에 투입돼야 할 수도 있다. 엄격한 비용-효율 계산 없이 정권 차원에서, 민족감정만 앞세워 추진된다면, 나라의 곳간이 거덜날 정도의 어마어마한 재정 부담으로 인해 나라의 앞날이 어두워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큰 그림이 국가 발전보다는 ‘진보 비즈니스’ 챙기기로 끝나고 만다면, 그 상실감과 실망감은 보수 정권 시절의 그것을 훨씬 능가할 것이다.


| 이종훈 정치평론가 rheehoon@naver.com

<이 기사는 신동아 10월호에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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