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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자폐증은 인지적 변이… 기술-문화 발전에 이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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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자폐증은 인지적 변이… 기술-문화 발전에 이바지”

조종엽 기자 입력 2018-09-22 03:00수정 2018-09-22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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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로트라이브/스티브 실버만 지음·강병철 옮김/700쪽·3만6000원·알마
자폐인이면서 뛰어난 공간 지각 능력과 기억력을 지닌 영국의 화가 스티븐 윌트셔가 싱가포르의 풍경을 화폭에 담고 있다. 그는 잠시 하늘에서 목격한 전경을 마치 복사하듯 그려낼 수 있다고 한다. 동아일보DB
1989년 5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자폐증 전문가들이 모인 학회가 열렸다. 연단에 축산 장비 디자이너이자 콜로라도주립대 교수인 40대 여성이 섰다. 그는 자신이 자폐인이라며 말했다.

“(어릴 적) 어른들이 말을 걸 때 저는 그 말을 전부 이해할 수 있었어요.… 하고 싶은 말을 입 밖에 꺼낼 수 없었지요. 비명을 지르는 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답니다.”

여성의 이름은 템플 그랜딘(현재 71세). 그는 자폐인이 경험하는 현실에 대해 수십 년간 의사들이 관찰해온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려줬다. 저자는 자폐증과 아스퍼거 증후군(언어와 인지능력은 비교적 정상인 자폐증의 일종)에 얽힌 역사를 다뤘다.

그랜딘 교수는 “누군가 고양이라는 단어를 말하면 일반적인 의미의 고양이가 아니라 이미 알고 있거나 책에서 본 구체적인 고양이들의 모습이 떠오른다”며 “이 같은 시각적 사고는 장비 디자이너로서 아주 요긴한 능력”이라고 했다. 일에 유용한 자신의 범상치 않은 재능을 소개한 것이다. 학회가 열린 2년 뒤에는 신경과 의사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올리버 색스(1933∼2015)가 그랜딘을 찾아갔다. 색스는 책 ‘화성의 인류학자’에서 자폐인인 그랜딘이 동물에게 느끼는 깊은 연대감을 탐구했다.

그랜딘은 엄청난 노력을 통해 사회적 규범에 적응하는 법을 배운 드문 사례다. 자폐인은 오랫동안 오해와 근거 없는 치료법에 내몰려왔다. 여기에는 1943년 ‘자폐증(autism)’이라는 이름을 붙인 미국의 소아정신과 전문의 레오 카너(1894∼1981)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자폐증이 냉담한 부모들의 잘못된 양육법으로 발병한다고 주장했다. 자폐증이 있는 아들을 둔 심리학자 버나드 림랜드(1928∼2006)는 자폐증은 선천적이라는 사실을 밝혀냈지만 잘못된 치료법을 옹호하기도 했다.

반면 ‘아스퍼거 증후군’에 이름을 남긴 오스트리아의 소아과 의사 한스 아스퍼거(1906∼1980)는 자폐인을 포용적인 방법으로 교육하면 능력이 향상되고 사회에 기여하며 살 수 있다고 믿었다.

자폐인들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면 어떨까. 터무니없이 예측 불가능하고, 혼란스러우며, 끊임없이 굉음이 들려오고, 개인 공간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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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도 운영체제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컴퓨터가 고장 난 것은 아니다. 인간의 운영체제 역시 흔히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고 해서 모든 기능이 버그라고 할 수는 없다. 자폐증의 기준에서 볼 때 ‘정상적인’ 뇌는 쉽게 산만해지고, 강박적일 정도로 사교적이며, 아주 작은 세부사항과 항상 일정한 방식으로 진행돼야 하는 것에 대한 주의력이 부족하다.”

또 자폐증, 난독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등은 능력 부족과 기능 이상이 아니라, 독특한 장점을 지니고 인류의 기술과 문화 진보에 이바지해 온 인지적 변이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시 그랜딘 교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그는 최초로 돌화살을 발명한 인간은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이러쿵저러쿵 잡담을 늘어놓던 정상인이 아니라, 동굴 후미진 구석에서 여러 바위의 차이를 강박적으로 파고들던 자폐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럴 법한 얘기다. 물론 자폐인 가운데 특정 분야에서 아주 특출한 재능을 나타내는 건 ‘서번트 증후군’이라고 불리는 소수에만 해당되니 오해는 하지 말자. 원제 ‘NeuroTribes’.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뉴로트라이브#스티브 실버만#자폐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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