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의 일상 속 비영웅적 삶 통해 영웅적인 삶 보여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20일 03시 00분


코멘트

‘포드의 문학’ 심사평

4월과 6월에 있었던 남북, 북미 정상 회담 그리고 그 후 남북 관계의 들고남의 큰 뉴스들은 우리 일상 저 아래 기층으로서의 남북 대결을 생각하게 하는 일이었다. 거기에다 올 여름의 더위는 또 다른 면에서 우리 나날의 삶 그 너머에 있으면서 그것을 결정하는 또 다른 큰 테두리를 상기하게 해주었다.

사람의 삶은 나날의 작은 일들로 이루어진다. 문학작품은 주로 여러 작은 삶의 기쁨-사랑의 환희, 인간 교류의 즐거움 또는 삶과 세계의 심미적 감상 등 작은 일들에 주목한다. 그러면서도 큰 것에 대한 느낌이나 이해를 무시하지 못한다. 그것을 이야기 또는 서사(敍事)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다만 복잡할 수밖에 없는 근대사회에서 이야기 또한 사회적 이론 특히 전체를 설명하려는 이데올로기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전체에 관한 이론들 대부분이 소실되어 가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리하여 여러 ‘거대 담론’ 또는 ‘거대 서사’가 사라졌다는 관찰들이 나온다. 문학은 어느 경우에나 거대담론에 대해 비판적 입장에서 큰 의미를 보여주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는데, 문학에 있어서도 ‘거대 서사’가 어려워진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 박경리문학상 수상 후보작들에서는 사실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거대서사를 생각하고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려는 노력을 볼 수 있다.

심사 석상의 마지막 후보에 올랐던 작가들에는 인도 출신 작가 두 사람, 알바니아 작가 한 사람, 그리고 미국 작가와 아일랜드 작가 한 사람이 있다. 이들 작가들의 업적에 대하여는 이미 심사 위원 여러 분이 논한 바 있다. 여기에서는 큰 흐름의 방향과 관련하여 이들 작품과 작가들을 함께 아울러 다시 생각해보자 한다. 비 서구 배경의 작가들은 큰 역사의 흐름 속에 있다. 그런데 영어 사용 지역에서는 그로부터 멀어진다. 그러면서 어떤 다른 흐름을 보여준다.

살만 루쉬디(1947∼ )가 세계적으로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그의 네 번째 소설 《악마의 시》(1988)가 출판되었을 때 이란의 이슬람 지도자 호메이니가 작가에 대해 ‘파트와’라는 살해 지시를 내린 일 때문이었다. 작품 속에 마호메트도 실수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 탓이었다. 루쉬디는 자신이 무신론자 또는 회의주의자 또는 회의주의적 신앙인이라고 말한 일이 있다. 이 작품 그리고 그의 다른 여러 작품에는 이러한 회의주의적 입장이 드러난다. 그의 두 번째 작품 《한밤중의 아이들》(1981)의 제목은 상징적이다. ‘한밤중’은 자신이 태어난 날이기도 하고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날이기도 한 시점을 말한다. 그것은 시작은 했으되 어디로 가는 것인지 분명치 않은 어둠의 시간이라 할 수 있다. 거대한 문명이 충돌하고 전환하는 시기에 일어나는 어려운 문제들이 그의 소설 주제가 된다.

또 한 사람의 인도 작가-인도인이면서 영어로 작품을 쓰고 영미 문화와 서구 문화에 깊이 관련된 아미타브 고시(1956∼ )에게서도 대전환 속에 있는 삶의 어려움과 혼란이 이야기의 주축이 된다. 그의 작품 《유리 궁전》(2000)과 《양귀비의 바다》(2008)는 주로 영국의 식민지통지 하에서의 인도의 현실을 그려내고자 한다. 이들 작품에 의하면, 영국 식민주의 또는 제국주의 통치에 정치적 군사적 강압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으나, 그것은 영국이 인도와 동남아에 가져온 여러 변화의 일부 요인일 뿐이다. 제목에 나오는 양귀비는 아편의 원료이다. 영국인들은 인도에서 재배한 아편을 중국에 수출하여 막대한 이윤을 얻어 낸다. 그 과정에서 경제적 이윤은 인도에도 돌아온다. 《유리 궁전》은 영국이 버마를 고무 생산지로 만들고 그것을 세계 여러 나라에 공급하여 거대한 자본을 축적하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 것이다. 이 영국의 자본주의 모험에서 인도는 동반자이다. 영국 식민주의는 군사적 정치적 의미를 가지면서, 자본주의적 기업의 모험이 된다. ‘식민주의적 근대화’라는 말이 있지만, 이것은 여기에도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삶을 지배하는 큰 흐름에 대한 고시의 인식은 식민주의 또는 정치를 넘어 간다. 《굶주린 조류(潮流)》(2004)는 조류의 흐름에 따라 변해야 하는 사람들의 삶을 보여준다.

알바니아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1936∼ )는 다른 어느 작가보다도 인간문제에 이데올로기적 해결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해온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작품들 가운데 어떤 것은 공산주의 국가인 알바니아가 아니라 프랑스에 밀반출되어 출판될 수밖에 없었다. 《아가멤논의 딸》(2003)의 중심에 있는 것은 5월 1일 노동절 행사인데, 평등한 사회라는 그 나라에서 행사 참여; 좌석 배열 순서-이러한 것들이 극심한 경쟁과 시기심의 대상이 되는 것을 보여준다. 더 중요한 이야기는 화자(話者)가 공산당 간부인 아버지의 출세를 위하여 애인과의 이별을 강요받게 되는 경위이다. 아버지의 위상은 이미 위태로운 것이 되어 있었다. 그가 근무하고 있는 방송사가 어느 청취자의 편지(공개된 장소에서 사회를 본 여성의 치마가 너무 길었다는 것을 지적한 편지)를 무시하였다는 혐의로 하여 그는 이미 비판의 대상이 되고 여러 단계의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 편지를 무시한 것은 민중의 의사를 존중하여야 한다는 명분에 위배되는 것이다. 《죽은 군대의 장군》(1963)은 알바니아에서 전쟁을 수행했던 외국의 장군이 알바니아와의 협약 하에 자국군 병사의 시신(屍身)을 거두어가는 경과를 이야기한 것인데, 그것을 총지휘하는 장군은 자신의 사명을 숭고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작업을 시작하지만, 알바니아인들의 적대 감정, 침략군의 횡포에 희생된 피해자의 사실적 원한, 그리고 장군 자신의 피로감에 접하여 당초 숭고한 것으로 생각한 사명감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카다레는 전쟁이라는 폭력과 거기에 드러나는 추한 폭력 행위에 대하여 별다른 대안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전통적인 사회질서에 대한 긍정적인 언급들이 있지만, 그 안에도 존재하는 폭력의 기율을 외면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위에 언급한 다른 작가들의 경우에도 비슷하다. 이들은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공산주의, 전체주의, 그리고 문화 충돌에서 일어나는 여러 고통을 말하면서도 어떤 분명한 대안을 보여주지는 아니한다. 이에 대하여 최종 후보작가 중 영어권의 작가들은 이념이나 정치 체제를 넘어서, 인간의 삶의 여러 모습에 대하여 조금 더 온화한 입장을 취한다고 할 수 있다.

아일랜드 작가 존 밴빌(1945∼ )의 작품 《바다》(2005)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내면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야기는 아내의 죽음에 대한 회상, 다른 여성들과의 관계에서 경험한 여러 사연, 그리고 독백자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장소에 대한 회상을 추억 속에 살리고자 하는 의식의 소산이다. 그것이 추억의 바다를 이룬다. 내면 회상이란 점에서 그것은 아일랜드 작가 제임스 조이스 식 내면 독백을 계승한다고도 말할 수 있는데, 새로운 서사 기법을 시험하는 것은 아니다. 내면에 수용되는 진실이 삶의 의미라는 그의 메시지는 《코페르니쿠스 박사》(1976)에서도 반복된다. 밴빌은 케플러 · 뉴튼 등 근대 과학 창시자들의 전기를 쓴 바 있다. 이것들은 사실적 연구에 기초한 작품들로 소설이자 과학사적 의미를 갖는 저작이다.

《코페르니쿠스 박사》는 전기이면서 당대의 정신 상황-말할 수 없이 부패한 정신 상황을 그려내는 소설이기도 하다. 그의 삶은 전기적 사실로 그려지기보다는 연구자의 주장을 통하여 전달된다. 코페르니쿠스는 부패하고 독단론적 폭력에 사로잡힌 세계에서 과학적으로 추론한 사실을 정직하게 전달하려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특징은 오히려 침묵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는 그의 발견을 전달하는 것보다 그것을 확인하는 일에 만족하려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은 당대의 검열이 두려운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오로지 진리만을 탐구하고자 하는 그의 한결같은 마음으로 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침묵하는 마음은 《바다》에서 내면의 회상이 그러하듯 삶의 진리를 담는 그릇이다.

혼란과 이기적 술책과 폭력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이 될 수 있는가? 미국의 작가 리처드 포드(1944∼ )도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그의 작품들에서 여러 가지 생각의 실험을 시도한다고 할 수 있다. 비교적 최근의 작품의 하나인 《캐나다》(2012)에서 그는 앞의 물음에 대하여 가장 상식적인 또는 진부한 답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소설의 주인공 델 파슨스는 그의 부모로 하여 열다섯의 나이에 캐나다로 도피하고 정착하게 된다. 그의 부모는 경제적인 이유도 있고, 무엇인가 정신을 고양하는 큰일을 벌이기 위하여 은행 강도가 된다. (공군 장교 출신인 아버지는 평상의 삶을 견디지 못한다.) 부모가 체포된 다음 주인공은 캐나다의 친지에게 보내진다. 이 소설에서 ‘캐나다’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대체로 황막한 자연 풍경이나 희박한 인구 등으로 표현되어 사회적 밀도가 낮은 곳을 상징하는 듯하다. 소년 델은 캐나다 중서부의 한 호텔에서 일하게 된다. 호텔은 주로 기러기 잡이나 물고기 낚시를 위하여 찾아오는 방문객을 수용하는 곳이다. 호텔의 소유주는 소년 델의 부모와 비슷하게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 나온 미국인이다. 은행 강도행위보다도 정치적인 의미를 가진, 그리하여 더 높은 의미를 가진 범죄 행위로 저지르고 도망온 것이다. 그는 하버드대학 재학 중 정치적 이념에 자극되어 적대 진영에 폭탄을 던진다. 그때 한 사람이 목숨을 잃는다. 그의 정치 이념이 무엇이었던가는 분명치 않다. 폭탄을 투척하는 시점에서 그는 극우(極右) 정치 이론에 매혹된 행동가였던 것으로 이야기된다. 그러나 달리 시사되는 것으로는 그는 극좌(極左), 아나르코 생디칼리슴(무정부 집단 노동자 주의)에도 이끌렸던 것 같다. 그를 움직인 것은, 델의 아버지와 비슷하게, 폭력의 숭엄한 의미였던 것으로 보인다. 하여튼 그는 폭력의 사용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의 폭탄에 죽은 젊은이 가족의 의뢰로 살해자를 찾아 나선 미국인 두 사람이 그 곳에 온다. 그들과의 대화 중 호텔 주인은 거침없이 그들을 사살한다. 델은 그 후 다시 어머니의 연줄을 찾아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학교로 돌아간다. 후에 그는 학교 교사가 된다. 쌍둥이 동생인 그를 두고 도망했던 바람둥이 누이와는 다르게, 가정과 교사직에 충실한 인간으로서 일생을 산다. 그의 삶의 철학은 주어진 조건 속에서 적절하게 옳은 삶을 사는 것이다.

포드의 다른 작품들도 대체적으로는 여러 가능성 속에서도 겸손한 삶을 사는 것을 긍정하는 것으로 끝난다고 할 수 있다. 《솔직하게 말하도록 해주세요》(2014)는 여러 이야기로 이루어져있다. 거기에는 출세하는 인생 노정에 들어선 흑인이 결국은 사회적 편견에 견디지 못하고 가족을 살해하고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다는 비극적인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면서 중심에 있는 것은 보통 사람의 삶이다. 이 소설에 포함된 네 편의 이야기 중 하나는 ‘새로운 정상(正常)’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 제목이 가리키는 정상이라는 것은 당대의 명품들을 비치하고 화려한 주택에 거주하면서, 주역(周易) 등 동양 사상에서 유래하는 여러 미신적 관행을 준수하며 생활하는 중상계층의 여성의 삶이다. 그것이 ‘새로운 정상’으로서의 삶인 것이다. 소설의 영어 제목은 ‘Let Me Be Frank With You’인데, 여기에서 ‘Frank’는 솔직하다는 뜻인 동시에 화자(話者)의 이름 ‘프랭크’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제목은 ‘나로 하여금 프랭크이게 하라’는 뜻이기도 하다. 소비주의의 미신 속에 사는 여성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면, 그로부터 거리를 지키고 사는 프랭크도 자신으로서-가식(假飾) 없는 자아로서 살게 해달라는 것이 제목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삶을 동기 짓는 것은 많은 경우 미래 지향의 커다란 목적이고 가치이다. 크기를 줄이는 경우 그것은 ‘기대감’이다. 그러나 그것도 버리고 현실의 필요에 적응하는 것이 바른 삶의 방법이다. 이 소설에서 기본적인 상황으로 설정되어 있는 것은 폭풍우에 파괴된 도시이다. 주인공은 이 지역에서 부동산 중개업에 종사한다. 중요한 것은 가능한 것을 할 수 있는 그러한 삶을 사는 것이다. 《스포츠라이터》(1986)는 스포츠 행사를 따라다니며 기사를 쓰는 기자의 이야기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소설가가 되려다가 기자가 되었다. 소설은 인생에 대한 큰 조감(鳥瞰)을 요구한다. 그는 이러한 큰 안목을 가지는 것이 비사실적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기사 작성자가 된 것이다. 《독립기념일》(1987), 《지형(地形)》(2006), 그리고 위에 언급한 《솔직하게 말하도록 해주세요》는 4부작을 이룬다. 네 작품에 나오는 같은 이름의 주인공은 보통의 삶에 일어나는 불행한 사건들-결혼, 이혼, 재혼, 문제아가 된 아들, 난치병, 이웃에서 볼 수 있는 폭력과 살인 등을 겪고 주시한다. 그러면서도 굽히지 않고 보통의 삶-그리고 선의의 삶을 살아간다. 《스포츠라이터》 이후 주인공은 부동산 중계업자가 되는데, 그것은 평범한 직업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안정된 인간 삶의 기초가 되는 토지와 주택에 주의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관계했던 그 지역의 부동산 그리고 그 주거인들에 대한 깊은 관심을 버리지 않는다. 그 지역이 폭풍우로 인하여 큰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그의 관심은 더욱 깊은 의미를 갖는다.

포드의 소설이 보여주는 것은 오늘의 삶이 벗어나지 못하는 여러 크고 작은 불행한 사건에도 불구하고 보통의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삶의 길이다. 큰 서사는 흔히 영웅적인 삶을 통하여 삶의 깊은 의미를 보여주려고 한다. 포드는 보통 사람의 보통의 삶-고통과 비극을 멀리할 수 없는 보통의 삶, 그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성실한 삶의 가능성을 찾아내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들은 포드 작가를 수상자로 선정하는 데에 전원 합의하였다. 여러 심사위원은 일단 그의 일상적 삶의 사실주의를 높이 평가했으며, 위에서 설명한 바 작품에 담긴 서사적 흐름의 메시지에 감동했다. 그의 작품은 비 영웅적 삶 속의 영웅적인 삶을 보여준다. 그것은 거대 서사가 없어진 곳에서 찾아낸 작은 거대 서사이다.

:: 리처드 포드 연표 ::

1944년 미국 미시시피주 잭슨 출생. 미시간주립대 영문학 학사, 캘리포니아대 문학 석사

1976년 단편소설 ‘내 마음의 한 조각(A Piece of My Heart)’으로 데뷔

1980년 스포츠잡지(‘인사이드 스포츠’)에서 3년간 기자로 일함

1986년 장편소설 ‘스포츠라이터’ 출간. 영국 타임지 ‘올해의 책 베스트5’로 선정

1990년 소설 ‘와일드 라이프’ 발표, 이후 ‘지형’ ‘수많은 죄’ 등 꾸준히 집필

1995년 소설 ‘독립기념일’로 펜포크너상, 퓰리처상 수상

2012년 소설 ‘캐나다’ 발표. 이 작품으로 이듬해 프랑스 페미나상 수상

김우창 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장
#박경리문학상#리처드 포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