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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박용]술 깬 뒤 ‘하인’ 탓하는 주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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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박용]술 깬 뒤 ‘하인’ 탓하는 주인들

박용 뉴욕 특파원 입력 2018-09-15 03:00수정 2018-09-15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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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 뉴욕 특파원
지난달 17일(현지 시간) 오후 미국 뉴욕주 롱아일랜드 핫도그 회사 ‘네이선스페이머스’의 하워드 로버 회장의 자택. 로버 회장의 30년 지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행정부 각료, 공화당의 내로라하는 부자 후원자 등 60여 명이 모였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정원 앞마당 텐트에서 치킨 샐러드를 먹으며 자신이 임명한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에 대해 “‘저금리(Cheap money) 연준 의장’이 될 것으로 기대했는데 금리를 올리고 있다”고 한탄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 달 전에도 “금리를 올리는 게 달갑지 않다”며 연준을 압박했다.

경제학자들은 세금을 거둔 곳간 열쇠를 쥔 정부와 금리 결정권을 가진 중앙은행의 관계를 술 좋아하는 주인과 충직한 하인에 비유한다. 주인은 정신이 말짱할 때 술 창고 열쇠를 하인에게 건네며 “내가 술을 많이 마시지 못하게 창고를 단단히 지키라”고 지시한다. 하지만 선거철 정치인처럼 만취하면 “술을 더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며 딴사람이 된다. 그래서 술 취한 주인을 막아서려면 충직한 하인에게 독립성을 보장해줘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월 중간선거와 2020년 재선에서 성공하기 위해 경제 성장의 군불을 계속 때야 할 상황이다. 그런데 연준이 눈치 없이 ‘충직한 하인’을 자처하며 금리를 착착 올리며 돈줄을 죄니 밉상도 이런 밉상이 없다. 일각에선 경제가 침체될 때 술 창고를 열지 않은 책임을 연준에 돌리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도 있다.

13일 한국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부동산 문제와 함께 한국은행이 도마에 올랐다.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금리가 문재인 정부 경제 정책의 딜레마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금리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할 때가 됐다”고 답했다. 세금 곳간을 풀어 경기 살리기에 매달린 건 이명박, 박근혜 정부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다를 바가 없다. 선거 전엔 잠잠하다가 이제 와서 “창고 문을 왜 따줬느냐”고 하인 탓을 하는 건 술 깨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는 의심을 받기 딱 좋다.

부동산 거품이 부풀어 오르는 걸 보면서도 한은이 금리를 올리지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진 건 경기가 살아나지 않아서다. 금리를 급하게 올리면 천문학적인 가계부채 부실과 서민의 금리 부담이 커질 텐데, 그 대책이나 마련해놓고 한은을 몰아세우는지도 걱정스럽다. 정부가 투기 대책을 쏟아내도 부동산 시장이 펄펄 끓는 건 다른 곳이 아프다는 신호다. 시중에 풀린 1100조 원의 부동자금이 다른 자산시장이나 생산적인 투자처로 흐르지 않고 왜 부동산 시장의 ‘똘똘한 한 채’로 직행하는지부터 탐구해야 한다.

뉴욕 맨해튼 타임스스퀘어에서 7번가를 따라 두세 블록을 올라가면 10년 전인 2008년 9월 15일 세계를 뒤흔든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원지가 나온다. 158년 역사를 가진, 당시 미국 4위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의 본사가 있던 곳이다. 리먼브러더스가 무너지는 날을 목격한 로런스 맥도널드 전 리먼브러더스 부사장은 저서 ‘상식의 실패’에서 “1주일에 두세 번 그곳을 지나가게 된다. 월스트리트가 있는 남쪽만 쳐다보며 걸어가려고 노력하지만 발길은 늘 그곳에서 멈추고 만다”고 적었다. 그는 2005년 부동산 호황기 이후 금융위기를 촉발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투자의 위험성에 대한 ‘충직한 하인들의 경고’가 9번이나 있었지만, 당시 경영진이 이를 무시했다고 지적했다. 세계를 뒤흔든 금융위기의 시작은 충직한 하인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상식의 실패’에서 비롯됐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박용 뉴욕 특파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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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금리#연방준비제도#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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