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사법부 70주년… 法治의 보루가 난파해서는 안 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13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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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70년 전 가인 김병로 선생의 초대 대법원장 취임으로 대한민국 삼권(三權)분립의 한 축으로 사법부가 완성된 날이다. 사법부는 유례없는 위기 속에 창립 70주년을 맞는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고 있는 양승태 직전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박병대 고영한 차한성 전 대법관은 오늘 기념행사에 참석하지 않는다. 다른 전직 고위 법관 중에서도 불참의 뜻을 밝힌 이들이 적지 않다. 사법부 구성원들 자신부터 자축의 기분이 들지 않는 날이다.

사법행정권 남용은 법원의 3차례 자체 조사에서 형사처벌할 정도는 아니라는 결론이 났지만 검찰 수사의 길을 터준 것은 김명수 대법원장 자신이다. 김 대법원장이 판도라의 상자를 연 이후 예상된 검찰과 법원의 대립으로 혼란은 수습할 길이 보이지 않는다. 김 대법원장의 불개입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지만 대법원장이 개입하는 순간 다시 사법행정권 남용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특별영장전담법관과 특별재판부에 대한 요구까지 나오고 있지만 위헌 소지가 크다. 그렇다면 결국 믿어야 하는 것은 영장심사와 재판을 담당할 법관 개개인의 양심이다. 법치를 수호해야 할 법관들은 지금 국민 앞에서 자기 조직의 문제와 관련해 전례 없는 양심 테스트를 받고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이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면 법원의 신뢰는 영영 회복되지 못할 수 있다.

작금의 위기는 직접적으로는 양승태 대법원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국민과 유리된 채 엘리트 법관의 아성이 된 법원행정처라는 조직과 무관하지 않다. 김 대법원장은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 등의 건의를 받아들여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기로 사실상 결정했다. 다만 법원행정처 폐지 이후에 법원 운영을 어떻게 할지는 쉽지 않은 문제다. 법원과 국회가 비상한 각오로 지혜를 모아야 한다.

개혁의 이면(裏面)에서 진행되는 ‘코드 사법화’는 사법행정권 남용 못지않게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있다. 김 대법원장이 회장을 지낸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의 법관들이 법원 요직을 대거 차지했다. 김 대법원장에 이어 유남석 헌법재판관이 헌재소장 후보자로 지명됨으로써 사법부 수장 두 자리가 우리법연구회 출신에게 돌아가게 됐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회장 출신이 잇따라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에 지명됐다. 자신들이 사법부를 정초(定礎)한다는 오만한 생각을 버리지 않으면 훗날 또 혼란이 찾아올 수밖에 없다.

국민은 사법부가 이대로 가다가는 난파하고 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의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법치의 최후 보루인 법원의 신뢰가 회복돼야 민주주의도 인권도 그 위에서 성장할 수 있다. 법원이 난파하지 않도록 모두 절제된 태도로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사법부#사법행정권 남용#양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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