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우경임]歷史 소각장이 된 박물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5일 03시 00분


코멘트
3일 날이 밝았고 붉은 화염은 사라졌다. 검게 그을린 외벽만 남은 브라질 국립박물관은 마치 거대한 소각장처럼 보였다. 인류의 역사를 증언하는 유물 2000만 점을 한 곳에 모아 불태운 셈이 됐다. 1만2000년 전 여성 두개골인 루지아는 가장 오래된 유골 중 하나로 인류의 이주 경로를 이해하는 열쇠였다. 500만 개의 절지동물 표본, 브라질 원주민 언어 녹음 기록, 이집트 케리마 공주 등 미라 7개…. 이를 토대로 이뤄진 연구도 함께 소실됐다. 전쟁 중 불탄 것으로 알려진 ‘인류 지식의 보고’ 고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화재와도 비견된다.

▷인류의 역사를 잿더미로 만든 이번 화재는 인재(人災)였다. 박물관이 문을 닫은 뒤 불길이 번졌는데 초기 진화에 실패했다. 브라질에 경제위기가 닥친 2014년 이후 연간 예산이 대폭 삭감돼 국립박물관의 보수도, 관리도 이뤄지지 않았던 탓이다. 스프링클러도 없었고 박물관 소화전 물탱크가 비어 있어 근처 호수에서 급수차로 물을 길어 와야 했다. 1818년 건립된 국립박물관은 5월 200주년을 맞았는데 당시 30개 전시실 중 10개가 문을 닫은 상태였다.

▷검은 비가 내리는 국립박물관 모습이 국운이 쇠한 브라질의 모습과 겹친다. 이 나라는 2000년대 신흥 경제대국으로 떠올랐던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중 맏형이었다. 이 시기 과도한 복지정책은 재정위기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박물관 연간 예산은 12만8000달러였는데 최근 5년간 전액 지원된 적이 없었다. 지난해는 8만4000달러, 올해는 1만3000달러(약 1450만 원)만 지원됐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잃어버렸다.” 고고학계의 탄식이다. 미국 스미스소니언, 프랑스 루브르 등 세계적인 박물관들도 일제히 “깊은 슬픔을 느낀다”고 했다. 국립박물관 앞에 모인 국민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이번 화재가 브라질 정부의 무능과 경제난에 대한 분노에 불을 댕길 것으로 보인다. 브라질 현지 신문 오글로부에는 이런 글이 실렸다. “일요일의 비극은 일종의 국가적 자살이다. 그리고 과거와 미래 세대에 대한 범죄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브라질 국립박물관 화재#브릭스#재정위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