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관된 미학인가, 정체된 예술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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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소 작가의 1973년 서울 명동화랑에서 전시했던 퍼포먼스 ‘소멸(선술집)’을 재현한 갤러리 모습. 이번 개인전 ‘소멸’은 이 작가의 1970년대 주요 퍼포먼스 작품을 재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갤러리현대 제공
이강소 작가의 1973년 서울 명동화랑에서 전시했던 퍼포먼스 ‘소멸(선술집)’을 재현한 갤러리 모습. 이번 개인전 ‘소멸’은 이 작가의 1970년대 주요 퍼포먼스 작품을 재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갤러리현대 제공
일관된 미학의 고수인가, 과거에 안주하는 안이함인가.

이강소 작가(75)의 1970년대 퍼포먼스를 그대로 재현한 전시 ‘소멸’이 지난달 23일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에서 공개됐다. 전시장에서는 즉흥적 만남으로 의미를 자아낸 1973년 ‘소멸(선술집)’과 1975년 파리 비엔날레에서 화제가 된 닭 퍼포먼스 ‘무제-75031’ 등 당시 미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준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활동 중인 작가의 신작이 아닌 40여 년 전 작품을 재현한 전시에서 재해석이나 새로운 대목을 찾기는 어려워 신선함보다 씁쓸함이 남았다. 작가는 과거 작업을 재현한 계기에 대해 “내 작품은 관객이 상상하는 것이기에 지금의 관객에겐 새로운 의미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이 작가는 1980년대부터 찰흙 조각과 ‘오리’로 유명한 회화를 선보일 때도 “관객이 느끼면 된다”고 설명해 왔다. 그러나 이는 반세기 전인 1960, 70년대 미국 중심으로 일어난 ‘미니멀리즘 예술’, ‘과정 예술’의 미학과 다르지 않다. 다만 ‘한국인의 선은 기운이 다르다’는 등 동양적 사상을 차별점으로 설명했지만, 그것을 조형 언어로 찾기는 쉽지 않다. 간담회 현장에서도 ‘외견상 단색화와 구분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으나 작가는 “내 작품을 단색화로 보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했다.

국제 미술계는 개인주의가 강해지는 시대적 흐름에 따라 작가의 관점을 적극 드러내기도 한다. 이런 가운데 한결같은 작업의 이유를 묻자 작가는 “자기주장은 근대적 아우성”이라며 “현대에는 관객의 다름을 인정해야 하고, 내 작업은 멍석을 깔아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작가의 미학적 출발뿐 아니라 변화도 가치의 중요한 기준이다. 미학의 견고함은 작품 변화로 입증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수십 년 동안 비슷한 조형 언어를 고수하는 것은 한국 주류 미술계의 전반적인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오상길 미술 비평가 겸 작가는 “적절한 비평을 제공하지 못한 환경 탓”이라며 “작가는 비평적 검증을 통해 당대 이슈를 성찰하며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재능이 감각적 유희로 흘러 안타깝다”고 했다.

또 다른 평론가는 “과거부터 관전(官展)을 중심으로 한 일부 작가들이 대학에서 안정적인 직위를 갖고 순탄한 작품 활동을 펼치는 분위기가 주류 미술계에 만연해 유사한 조형 언어를 반복하는 폐해가 생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현실이 예술을 전업으로 삼는 작가들의 입지를 좁힐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갤러리현대 측은 간담회에서 “광주 비엔날레를 계기로 국제 미술계에 한국 실험 미술을 선보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 미술계 관계자는 “미학이 부족한 작품 띄우기가 장기적으로 시장 침체로 이어질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이강소#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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