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팽목항, 마음에 묻습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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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팽목분향소 43개월만에 정리
유족들 “바다서 온 아이 처음 본 곳”… 영정사진-위패 챙기며 눈물

3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 옆에 설치된 천막에서 진도군 공무원들이 희생자들의 영정사진을 보관할 사진함에 이름을 적은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진도=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3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 옆에 설치된 천막에서 진도군 공무원들이 희생자들의 영정사진을 보관할 사진함에 이름을 적은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진도=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3일 오후 5시 전남 진도군 팽목항의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 단원고 학생이었던 고 김도언 양의 어머니 이지성 씨가 제단을 물수건으로 닦았다. 1시간여 뒤면 분향소 정리가 시작될 시점이었음에도 제단을 깨끗하게 닦는 것이 애틋한 부모의 마음인 듯했다. 이 씨는 “아이들의 희생을 지켜봤고 슬퍼했던 추모공간인 팽목항 분향소가 정리돼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오후 6시 ‘부모이기에 포기할 수 없습니다’라는 노란색 조끼를 입은 세월호가족협의회 유가족 30여 명이 분향소에 들어와 헌화와 분향, 묵념을 했다. 이후 단원고 2학년 1반 고 김민지 양의 영정사진과 위패를 옮기는 것을 시작으로 진도군 관계자들과 함께 분향소 내부를 조심스럽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희생자들의 사진과 위패를 옮기는 데 약 1시간 반이 걸렸다.

분향소에서 나온 영정사진과 위패는 옆 천막에서 완충재에 둘러싸여 상자에 담긴 뒤 노란 보자기에 싸였다. 분향소 옆 천막에서 사진과 위패를 보던 고 이보미 양의 어머니는 “보미야, 엄마가 집에 데리고 갈게”라고 말하며 흐느꼈다. 사진과 위패가 든 보자기를 건네받은 다른 유가족들도 눈물을 참지 못했다. 일부 유족은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팽목항 합동분향소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지 약 9개월 뒤인 2015년 1월 14일 진도군과 시민들의 도움으로 문을 열었다. 이후 3년 7개월여 만에 분향소가 정리된 것이다. 유족들은 ‘세월호 선체 인양, 해저 수색이 끝나면 팽목항 분향소를 정리하겠다’고 진도 주민들과 약속했고, 그 약속을 지켰다.

단원고 학생 고 고우재 군의 아버지 고영환 씨는 “팽목항은 바다에서 올라온 아이들이 부모와 맨 처음 만났던 곳”이라며 “팽목항 기다림의 등대를 비롯해 진도항에 작은 추모공간이 마련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팽목항 분향소가 있던 공간은 전남도가 추진하는 진도항 2단계 개발사업 구간으로 여객선터미널 등 항만시설 공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진도=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팽목항#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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