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서영아]인구 99%가 노동하지 않는 세상?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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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아 도쿄 특파원
서영아 도쿄 특파원
중년 세대들과 얘기하다 보면 자녀들에게 아무 조언을 해줄 수 없어 고민이란 말을 많이 듣는다. 오늘보다 내일이 풍요로워지고 민주화될 거라는 믿음 속에 살아온 기성세대의 경험이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전혀 참고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생인 딸아이에게서 듣는 얘기는 한술 더 뜬다. 성장 기간 내내 경쟁에 시달려온 아이들은 진로를 고민할 때 로봇이나 인공지능(AI)과의 경쟁을 걱정하고 있다. 가령 회계사 은행원 딜러 같은 직업은 어렵사리 자리를 얻더라도 AI에 밀려날 직업 1순위로 꼽힌다. 교사도, 의사도, 통역사도… 공무원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

“요리나 패션 같은 건 AI가 사람을 못 따라가지 않을까”라고 말하는 순간 신문에는 ‘패션 코디도 AI가 한다’는 기사가 보인다. 운전 자동화는 이미 현실이 됐다. 도쿄에서는 2020년 일부 지역에서 자율 운전 택시를 상용화한다는 계획하에 시험 운전을 시작했다. 장기 바둑 체스는 물론이고 소설도 AI가 쓰는 세상이다. 그 진보의 속도는 머잖아 사람의 일을 기계에 빼앗길 것이란 우려에 현실감을 더해준다. 서구에서 벌써부터 로봇의 노동으로 생산하는 경제적 가치에 부과하는 세금인 로봇세나 국민 모두에게 주어지는 기본소득제 논의가 나오는 이유다.

그러던 중 일본의 젊은 작가가 쓴 ‘미래 직업소개소’(이스카리 유바 작)라는 신간 소설을 보게 됐다. 일본인 대부분이 일하지 않게 된 미래 세계 얘기다. 인구 99%가 직업 없이 정부가 지급하는 생활기본금으로 살아가는 ‘소비자’가 되고 나머지 1%만이 ‘생산자’로서 노동하는 사회다. 직원 2명인 작은 직업소개소를 무대로 한 이 소설에는 일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에서 일부러 일을 원하는 사람들의 사연과 여전히 기계가 대체하지 못한 직업들이 등장한다.

소설 속 운영자에 따르면 직업소개소를 찾는 고객은 세 부류다. 돈이 필요한 사람, 심심한 사람, 사회에 공헌하고 싶은 사람. 미래에도 기계로 대체할 수 없는 직업으로는 자동 운전 자동차가 사고를 일으켰을 때 대신 책임을 지고 그만두게 하기 위한 용도의 공무원, 인도의 초일류 일식 레스토랑이 입구에서 고객들에게 인사하는 역할을 맡기기 위해 구인 의뢰한 일본인 점원 등이 나온다.

졸업생의 30%가 생산자가 되는 일류 대학을 나온 한 고객은 노예처럼 묶이는 생활이 싫다며 소비자의 삶을 택한 뒤 수십 개의 자격증을 따는 것으로 무료함을 달랜다. 결혼은 싫지만 2세는 남기고 싶은 그는, 무성생식으로 자신의 클론을 만들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직업소개소를 찾는다. 놀랍게도 저출산 문제는 오히려 해결돼 있다. 생활기본금은 머릿수대로 주어지니 가족 규모가 어느 정도 돼야 여유 있게 살 수 있다. ‘소비자’들은 학교를 졸업하면 바로바로 결혼해 가정을 꾸리는 게 상식이 된다. 생산자가 소비자보다 수입이 많긴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생산자가 되겠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다.

읽다 보니 소설의 배경이 한국이라면 조금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뇌리를 스친다. 상승욕구가 강한 한국인이라면 너도나도 1%의 생산자가 되기 위해 무한경쟁에 나서지는 않을까. 그런데, 평생 먹고사는 데 불안이 없는 세상에서도 상승욕구는 샘솟는 걸까. 일을 하나 하지 않으나 마찬가지인 세상이 온다면 나는 어떤 인생을 택할까 등….

어쩌면 우리는 삶의 의미와 목표가 완전히 달라진 세상을 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당장 내일, 한 달 후, 1년 후를 살아내야 하고 그것들이 쌓여 미래를 열어갈 것이란 점도 분명하다. 곧 자율주행차 시대가 열린다면서도, 아이는 운전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서영아 도쿄 특파원 sya@donga.com
#ai#로봇세#기본소득제#미래 직업소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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